중국 해커, 기발한 제목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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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무심결에 첨부파일을 클릭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사람의 심리를 파고든 바이러스 메일은 처음 봅니다."

정부기관의 개인용 컴퓨터 200여대가 해킹당한 사건을 수사한 경찰 고위 관계자가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어찌 보면 이번 해킹 기법은 간단히 막을 수 있는 초보적인 것이었다. 즉 e-메일의 첨부파일만 열지 않았다면 해킹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부 인사형=지난 3월 국회와 한국국방연구원(KIDA) 등을 해킹한 중국 해커는 '봄이 와요'라는 제목으로 e-메일을 보냈다. 해킹에 이용된 '핍(Peep)' 바이러스 첨부파일의 이름 역시 '봄이 와요'였다. 경찰 관계자는 "봄철에 친한 사람에게 안부 인사를 올리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봄이 와요'라는 제목을 이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 분위기형=해커들은 탄핵 정국 기간에는 '대통령 탄핵.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한 설문을 받는다' 등의 제목을 즐겨 사용했다. 해킹 프로그램은 '설문지'라는 이름으로 위장됐다. 발신자는 국내 유명 여론조사 업체 이름을 도용한 것이었다.

◇업무 관련형=KIDA의 컴퓨터에 침입한 해커는 KIDA가 군 관련 연구기관인 점에 착안해 미국 대형 항공 군수업체의 국내 대리점 직원을 사칭했다. 이 해커는 KIDA에 "국방부와 공동으로 무기체계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인데 꼭 참석해 달라"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또 원자력연구소에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 ○○○입니다. 논문을 쓰는데 첨부와 같은 자료가 필요하니 첨부파일을 열어보고 관련 자료를 꼭 보내주십시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무기체계 워크숍 안내와 대통령 탄핵 설문 등을 보낼 정도라면 한국 사정을 치밀하게 연구한 해커"라며 "이는 해킹 목적도 단순한 기술 과시 차원을 넘어 불순한 의도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희성.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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