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친일 행적도 문제 삼지 않으면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의문사위는 간첩.빨치산 출신으로 복역 도중 공안 당국의 강제 전향을 거부하다 옥사한 최석기씨 등 세명의 죽음을 지난달 말 의문사로 결정한 것과 관련, 그 배경과 위원회의 입장을 16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의문사위는 "위원회 결정은 준사법적 성격의 결정으로 재판과 같아 어느 누구도 감독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해명 요지.

1. 양심의 자유와 자유민주제도에 대해

자유민주 국가는 권력이 만능이 아니라는 국가권력의 한계성과 권력남용으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 장치로서의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법치국가는 권력 주체가 사상.신조.신앙의 주재자나 심판자가 될 수 없다.

2. 간첩과 빨치산을 편들었다는 점에 대해

(1) 좌익활동 전력자에게 설 땅을 주지 않겠다는 주장에 대해-한국이 전력이 잘못된 자를 인간으로, 국민으로 보지 않고 마녀사냥을 할 정도로 법과 인권을 무시하는 나라는 아니다. 친일파로 일제부역을 하고 해방 후 한때 좌익 활동으로 무기징역으로 사형 직전에 이르렀던 육군장교 박정희에 대해 사람들은 그의 전력을 문제삼지 않고 그것을 잊고 싶어한다.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행적을 얼버무리며 사는 이가 있어도 그를 추적하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관용이다.

(2)좌익분자는 국민으로 처우할 것 없다는 주장에 대해-인권사상은 사람 존중의 이념이고 신분. 인종.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 빨갱이는 고문해도 괜찮다는 식의 억지가 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전력이 잘못되어 위험한 존재라 해도 법을 무시하고 고문하고 죽여선 안 된다.

(3)전향거부자는 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자유국가 치고 강제전향제도를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 일제 치안유지법의 산물인 전향제도를 몇 해 전까지 유지해 온 것이 부끄럽다. 전향거부자는 적이니, 보호할 법이 대한민국에는 없다고 하면 유엔인권위원회나 국제사면위원회는 좌익편을 들고 있는가? 전향제도를 폐지한 대한민국에 긍지를 느낀다.

(4)전향거부가 인권제도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전향거부자들은 자존심을 지키거나 불법에 항거하고자 하는 등의 목적의식이 있었다. 전향제도의 불법성에 목숨을 걸고 희생했다. 전향제도의 남용이나 사회의 감옥화.병영화는 유신독재시대의 실상이다. 전향거부자들은 폭정에 항거해 죽었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5)위원회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은 한나라당이 다수당일 때 국회에서 통과됐다. 위원들도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했다. 위원회의 결정은 준사법적(準司法的) 성격의 결정으로 재판과 같이 각 위원이 독립심판관으로 결정한다. 각자 자기 판단과 책임에 따라 하는 것으로 어느 누구도 감독.지시.규제할 수 없다.

위원회의 특정결정에 대해 못마땅한 것이 있다고 해서 위원회를 해체하라거나 위원 개인의 신상에 대한 모욕 등 각종 불법적 압력을 가하는 일은 양식 있는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