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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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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간은 비합리적 행동을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비합리적 행동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주위 사람을 믿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결과는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다. 이런 게임이 있다. 당신에게 1만원이 있다. 이 돈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면 1만원이 4만원으로 불어난다. 그는 4만원을 그냥 가지거나, 당신에게 1만5000원을 돌려주는 선택은 해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합리적이라면 1만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1만5000원을 돌려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최근 미국 대학에서 1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했더니 절반이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줬다. 또 돈을 받은 사람의 75%가 1만5000원을 되돌려줬다.

사람들이 이처럼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게 새로운 경제학 분야인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버넌 스미스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앞의 게임을 할 때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두뇌 활동을 촬영해 연구했다. 그 결과 이성보다 더 강력한 다른 정신 작용이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상대방의 반응을 예상한 뒤 그를 믿어보자는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무의식적인 정신활동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미국 클레어몬트대의 폴 자크 교수는 옥시토신(oxytocin)이란 호르몬이 신뢰와 관련된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채비를 갖추게 만들고 연인들이 껴안고 싶도록 만드는 물질이기 때문에 '포옹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자크 교수는 신뢰행동을 일으키는 옥시토신은 식사나 마사지, 섹스 등을 통해 분비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받고 있다는 사회적 의식으로도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사회적 신뢰는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문화적 덕목으로 꼽힌다. 자크 교수는 국가적 차원에서 옥시토신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독립적인 언론매체, 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 법에 의한 정치 등을 제시한다. 즉 투명하고 열린 사회일수록 경제주체들의 옥시토신 분비가 많아져 사회 전체의 신뢰수준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우울증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옥시토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