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철새정치인 왜 생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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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만큼 정당의 이합집산이나 정치인의 당적 이동이 잦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이 비 (非) 서구국가들 가운데 민주화가 비교적 진전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기이한 현상이다. 도대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정치인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내적 문제와 정치인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내적 문제가 정치인 자신의 신조 및 자질과 관계된 것이라면, 외적 문제란 정치생명의 유지를 위해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따라야 하는 구조적 문제, 그리고 제도적 차원에서 이미 틀지워져 있는 조건 등을 가리킨다.

구조적 문제는 한국 정당이 시민사회의 조직화된 이익과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정당이 정상적으로 발전하려면 시민사회의 동원화를 거쳐 스스로의 가치와 이익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로 지역적 연고에만 뿌리를 둔 채 지역대표자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이는 우리 정당체제가 상향식·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하향식·공급자 중심으로 발전해 온 원인이기도 하다.

제도적 결함은 1차적으로 헌법이 규정해 놓은 정부형태가 국민의사에 더 이상 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구체적 사례는 선거결과에서 나타난다.

국회의원선거나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항상 3~4개 정당 중심의 다당제 구조를 만들지만 이는 선거후 얼마 안있어 금방 양당제로 되돌아가버린다. 바로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정당의 이합집산이 발생한다. 선거결과를 염두에 둔 채 이뤄지는 선거 직전의 이합집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빈번한 이합집산의 근본원인이 제도 (정부형태) 와 현실 (국민의사) 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개선책은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까. 제도가 우선이라면 선거후 인위적 정계개편과 그에 따른 국민의사의 '배반' 은 피할 길이 없다. 반대로 국민의사가 우선이라면 정부형태를 협의제 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

헌법상 규정된 현재의 정부형태는 다수제 민주주의 (majoritarian democracy) 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다수제 민주주의는 양당제· 단순다수대표제·권력의 일당독점 등을 기반으로 삼는 반면, 협의제 민주주의 (consociational democracy) 는 다당제·비례대표제·연립을 통한 권력분점 등을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유권자가 선택한 정치적 세력관계는 협의제 민주주의의 틀로서만 수용가능한데도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다수제 민주주의로 남아 있다. 바로 이러한 불일치에서부터 철새정치인들이 생겨나고 또 지금과 같은 정치불안이 발생한다.

협의제 민주주의는 대정당과 군소정당의 실질적 연립을 가능케 해 소정당들에게 생존의 기회를 부여해준다. 녹색당과 같은 테마정당이 유럽 대륙에서는 성공적인 반면, 미국·영국·한국 등에서는 그렇지 못한 결정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협의제 민주주의의 정치적 안정은 한편으로는 사회적 갈등요소를 여러 정당들을 통해 수용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의회다수를 보유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줌으로써 이뤄진다. 우리의 현 정치불안은 의회다수파와 정부·여당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 구조는 오히려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그 해결책과 이어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국민들은 선거때마다 협의제 정부형태를 필요로 하는 정치적 세력관계를 만들었으면서도, 정서적으로는 현행 대통령제와 같은 다수제 정부형태를 고집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 제도에 대한 오해가 내재한다. 그래서 국민과 정치인 모두에게 협의제 (대륙형 의원내각제, 프랑스의 이원집정제, 스위스의 합의제 등) 와 다수제 (영국의 내각제, 미국 및 한국의 대통령제 등)가 형태와 기능에 있어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박병석 성균관대 사회과학硏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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