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한파] 궁핍해진 가정 인륜이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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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속에 '위기의 가정' 이 늘면서 인륜이 무너지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의 부도·실직으로 부부관계가 악화되며 이혼이 급증하고 생활고로 노부모·어린 자식의 부양을 포기하는 비정한 상황. 또 처지를 비관한 가장이 알콜중독자가 되고 주부는 돈벌이를 위해 윤락행위에까지 나서는 등 사회구성의 최소 단위인 가정의 해체 위기가 현실화돼 눈앞에 다가온 5월 '가정의 달' 을 우울하게 한다.

◇ 부모님을 맡아주세요 = 사단법인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에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부모님을 더 이상 모실 수 없게 됐다. 맡길 시설을 찾아달라" 는 전화가 매일 3~4통 걸려온다.

한 노인은 "자식이 실직해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 안쓰럽다. 차라리 내가 집을 나가는 게 낫겠다" 며 사정을 호소했다.

또다른 노인은 "아들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출하는 바람에 며느리도 덩달아 집을 나가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나 중학생인 손자와 나만 남았다.

어쩌면 좋으냐" 고 하소연했다.

무의탁 노인 수용시설인 경기도부천시 성가양로원에도 올들어 노부모를 맡기겠다는 전화가 지난해보다 3~4배 이상 늘었다.

◇ 엄마·아빠 어서 돌아오세요 = 金성호 (가명·7·초등학교1) 군· 성희 (가명·4) 양 남매는 지난 2일부터 고아가 돼 서울 A보육원에서 부모를 기다리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金군 남매의 아버지 金모 (34) 씨는 지난 1월 운영하던 건축자재 납품업체가 부도나 졸지에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고 어머니 崔모 (32) 씨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가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기아.미아.미혼모 아동.가출아 등 이른바 요 (要) 보호아동은 96년까지 연간 5천명 안팎이었으나 지난해엔 6천7백34명으로 급증했다. 또 올들어 영아원.육아원 등 보호시설에 아이를 맡기겠다는 상담전화가 전국적으로 지난해의 2배에 이르고 있다.

◇ 술에 의지하는 실직 가장 = 경기도화성군에서 최근까지 새시제조업체를 운영하던 李모 (45) 씨는 3월말부터 알콜중독 환자 전문치료기관인 오산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불황으로 공장문을 닫은 뒤 상심해 매일 술을 마셔 '폐인' 상태가 되자 부인과의 상의 끝에 병원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이하경.최익재.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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