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에 인력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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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인 미국 N사 한국지사에는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2천3백여통의 이력서가 접수됐다. 당초 예상했던 1천5백여통을 크게 뛰어넘은 수치. 올들어 접수가 더욱 늘어 최근에는 지난해보다 2배나 많은 한달 평균 2백여통이 들어오고 있다.

이 회사 인사부 관계자는 "컴퓨터 관련 사업부가 해체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H사를 비롯, 대기업인 S.L사의 30~40대 직원들도 자신들의 신분에 불안을 느껴서인지 이력서를 내고 있다" 고 귀뜸했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국내 기업들의 고용 불안정 상태가 지속되면서 대졸예정자나 퇴직자는 물론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외국기업으로 눈을 돌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평생직장' 의 고용관행이 사라진 마당에 능력만 있다면 수시채용과 연봉제가 정착돼있는 외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외국기업 선호 = 미국계 C은행이나 소매금융을 시작할 계획인 영국계 H은행등 외국계 은행에는 국내 금융기관들에서 '해고' 되거나 해고위기에 시달리는 인력들이 몰리고 있다. 외국계 기업은 우편으로만 이력서를 접수하고 있으나 C은행의 경우 한달 평균 30~40명의 경력자들이 이력서를 내기 위해 직접 찾아오고 있다.

이 은행의 한 직원은 "이력서를 낸 사람들의 90% 정도가 종금사.증권회사 등 최근 부실문제가 두드러졌던 국내 금융기관 출신이다" 라고 말했다.

대기업 출신 경력자들은 헤드헌터 분야 외국기업을 선호하고 있다. 헤드헌터 사업체인 호톤 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4배까지 늘어난 구직신청자 가운데 60% 이상이 대기업 출신이며 이 가운데서도 이사 이상 임원급의 비율이 큰 폭으로 늘었다는 것. 특히 요즘에는 국내에 상주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의 빈자리를 알아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해외로 진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좁아진 대졸자 취업문 = 대학에서도 외국계 회사취업을 희망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으나 대부분의 업체들이 경력직 선발을 우선하고 있어 실제로 대학생들이 취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까지 외국기업에 대학생을 알선.소개해주던 스타 커뮤니케이션스 관계자는 "요즘은 신규 채용하는 외국업체가 거의 없어 대졸 예정자의 이력서를 받지 않고 있는데도 하루 20여통씩 문의전화가 온다" 며 "국내기업의 극심한 취업난에다 외국기업들의 경직되지 않은 근무환경 등이 이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인 것 같다" 고 분석했다.

그러나 업계 인사담당자들은 "외환위기가 계속되면서 외국계 기업들의 상황도 어려워지는 바람에 대부분 채용을 최소화하고 있어 고용효과는 크지 않은 편" 이라며 "설사 취업이 되더라도 연공서열형 기업문화에 젖어있는 경력자들의 경우 능력을 위주로한 기업풍토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조언했다.

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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