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일깨우는 법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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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보이는 만물은 관음 (觀音) 이요/들리는 소리는 묘음 (妙音) 이라/보고 듣는 이밖에 진리가/따로 없으니/아아 시회대중 (時會大衆) 은/알겠는가…/산 (山) 은 산 (山) 이요/물은 물이로다. ' 성철 (性徹.1911 - 1993) 스님이 지난 81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면서 내린 이 법어는 어렵게만 여기던 큰스님들의 말씀을 산문 밖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암울한 정치현실 탓이었는지 술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였다. 법어로는 최대의 '히트작' 인 셈이다.

다소 논리적이고 설명적이던 그 전의 법어와는 달리 어려운 한문을 버리고 쉬운 우리말로, 시적 상징에다 선 (禪) 적 분위기까지 가미한 것이 보통사람들의 가슴에 닿았던 것이다. 법어는 살아 있는 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으로 법문이라고도 불린다.

어느 종교나 지도자의 메시지에는 사회와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불교의 경우 특히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절을 찾는 불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법어에 이르면 이것도 법어인가 할 만큼 격식이 허물어진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 (曉峰.1888 - 1966) 스님은 남의 말을 늘어놓기를 즐기는 신자들에게 언제나 '너나 잘 해라' 라는 법어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성찰부터 먼저 하라는 주문이었다. 또 송광사에서 오랫동안 참선을 했던 구산 (九山.1908 - 1983) 스님은 대중설법 끝에는 언제나 '월요일은 베풀고, 화요일은 바르게 살고, 수요일은 무엇이든 참아보고, 목요일은 정진하며, 금요일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토요일은 슬기롭게 살고 일요일은 봉사를 하라' 는 법문을 빠뜨리지 않았다.

성철스님이 82년 부처님오신날에 남긴 법어도 화제였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자기를 바로 봅시다.

' 사회 전반이 뒤틀렸던 상황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성철스님은 자기성찰이라고 역설했다.성철스님이 부처님오신날 내린 법어 중에서 스님들 사이에 '백미' 로 꼽히는 것은 86년 법어.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교회에서 경건한 부처님들/오늘은 당신네의 생일이니 축하합니다. ' 죄수든 술집 작부든 노력을 하지 않았다뿐이지 부처가 될 씨앗은 품고 있으니 절대로 멸시하거나 천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어 조계종 종정에 오른 월하 (月下) 스님도 성철스님처럼 게송 (偈頌) 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성철스님보다 약간 더 어렵다. 94년에 월하스님이 부처님오신날 내린 법어. '대성은 본래 출몰이 없거늘/군생을 위하여 반연을 초절했을 뿐이로다.

/시냇물 소리가 바로 광장설이요/산색이 어찌 청정 신이 아니겠는가!' 앞부분은 범인 (凡人) 이나 성인 (聖人) 이나 다 같다는 뜻이고 뒷부분은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 (蘇東坡) 의 오도송 (悟道頌)에서 옮겨온 것으로 무정물 (無情物)에도 불성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IMF한파로 고통받는 이웃이 많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법어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한국 최대종단인 조계종에서는 종단내의 갈등으로 부처님오신날은 5월3일로 다가오지만 법어가 나오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아쉽지만 다른 고승의 법어에서라도 삶의 지혜를 얻어봄이 어떨까. 중국 당나라 임제의현 (臨濟義玄.?~867) 선사가 남긴 '수처작주 (隋處作主) 입처개진 (立處皆眞)' - 어떤 경우에도 항상 주체성을 확립하여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말라' 는 뜻이다.

다시 말해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다. 또 선림 (禪林)에서 자주 인용되는 '청풍언초이불요 (淸風偃草而不搖) 호월보천이비조 (皓月普天而非照)' 도 갈수록 각박해지는 심성을 다스리게 한다.

'맑은 바람은 풀을 넘어뜨리되 흔들지는 않고/밝은 달은 하늘을 가득 채우나 비추지는 않는다' 는 뜻으로 인생살이의 길을 가르쳐준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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