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적' 표현 삭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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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방부가 4년 만에 내놓을 2004년판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主敵)'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다른 용어를 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15일 "주적 개념은 시대착오적"이라며 국방부를 옹호했지만 한나라당은 "정부가 안보의식의 혼란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눈에 띄게 화해협력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만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은 "주적 개념을 뺀다면 국론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주적'삭제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남북 화해국면을 고려한 때문이다. 군사당국자 회담이 진행 중이고, 남북 간에 군사 핫라인도 만들어진 상황에서 북한을 노골적으로 '적'으로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테러가 빈발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상대할 적은 꼭 북한만이 아니라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주적'이라는 표현이 국방백서에 등장한 것은 1995년부터다. 94년 3월 남북 특사교환을 위해 열린 제8차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2003년 사망) 대표가 '서울 불바다'얘기를 한 게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주적 논쟁이 벌어졌고, 군은 북한을 주적으로 적시했다.

그러나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거치면서 이 표현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남북한 화해 분위기와 현실적인 북한의 위협 사이에서 가치관에 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논란이 벌어지는 사이 북한은 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의 조건으로 국방백서에서 '주적' 표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해 국방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국방부는 2000년판 국방백서를 끝으로 그동안 백서를 발간하지 않았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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