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포트]실업스트레스 '파리의 잠못이루는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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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딜 (44.여) 은 프랑스 굴지의 은행 인사부 직원이다.고졸로 입사, 올해로 경력 25년째지만 여전히 말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봉급은 순수령액 기준으로 월 8천5백프랑 (약 2백만원) .프랑스 월급쟁이 치고는 박봉이다.

퇴근과 함께 그녀는 발길 닿는대로 거리를 쏘다니다 귀가하는 게 습관이 됐다.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퇴근 무렵마다 느끼는 지독한 두통과 현기증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상사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들볶아대죠. 개인으로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오로지 결과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녀는 스트레스와 두통을 달래기 위해 약을 먹다보니 신경안정제와 진통제는 필수품이 됐다.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 (20일자) 이 사례로 든 오딜은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이다.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IFOP는 프랑스 근로자의 57%가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한다고 전한다.올라갈수록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져 단순노무직 (47%) 보다는 간부직 (69%) 이 훨씬 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한 약물복용도 크게 늘었다.프랑스 근로자의 약물복용은 유럽 최고로 전체 직장인중 3분의1이 진정제.흥분제.각성제 등 각종 약물에 의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수면성 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은 해마다 1억5천만개가 판매돼 세계 최고 소비국이다.

프랑스 국립 노동심리연구소장인 크리스토프 드주르 박사는 "근로자들의 심리적 불안은 '두려움' 에 기인한다" 며 고용의 불안정성 및 실업증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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