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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하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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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때 40%였던 조선맥주의 시장점유율은 1990년대 들어 28%까지 추락하고 있었다.

쌉쌀한 유럽 정통 맥주를 만든다는 자부심은 강했지만 소비자들은 순한 맛을 선호했다. 이를 보완해 부드러운 ‘마일드’와 ‘수퍼드라이’를 내놨지만 재미를 못 봤다. 박문덕 현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91년, 조선맥주는 히트 상품을 못 내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위기 의식 속에 92년 신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그해 5월 20여 명이 호텔방을 빌려 먹고 자며 연구에 들어갔다.

당시는 낙동강 페놀 사태가 벌어진 후여서 소비자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컸다. 전주·마산공장이 깨끗한 물을 쓰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는 점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았다. 수십억원대의 추가 비용을 감수하고 일본에서 주로 쓰던 비열처리와 마이크로세라믹필터(MCF) 공정을 도입했다. 껍질을 완전히 제거한 맥아를 분쇄, 발효시키는 드라이밀 공법으로 씁쓸한 맛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생산과 재무 쪽에선 비용이 더 들어간다며 반대했지만 박 사장이 밀어붙였다. 새 맥주에 걸맞은 이름으로 소비자 조사 결과 ‘라이브’가 꼽혔다. 하지만 “평범하다”는 등의 격론 끝에 소비자 선호도 2위였던 ‘하이트(사진)’란 이름으로 93년 5월 출시됐다.

처음엔 냉장고에 들어있지 않아 팔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를 돌파하는 기회는 우연히 왔다. 실내에선 흰 티셔츠인데 햇볕을 받아 더워지면 무늬가 생기는 ‘시온잉크’를 쓴 티셔츠를 판촉물로 납품하려는 업자가 찾아왔다.

하이트 마케팅담당 박종선 상무는 “이거다 싶어 반대로 시원하면 무늬가 생기게 해달라고 했지만 결국 개발을 못해 세계 곳곳을 뒤져 영국의 한 업체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시원해지면 온도계가 생기는 ‘온도계 마크’였다. 마크를 보려고 소비자들이 소매점에 하이트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했다. 영업사원 역할을 소비자들이 해준 셈. 결국 96년 업계 1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230억 병, 16년 동안 초당 45병이 팔렸다. 하이트의 히트로 조선맥주는 33년 창립 때부터 쓰던 회사 이름도 98년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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