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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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그룹들은 아직도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경영권 세습이나 총수에 의한 임원 임면 등이 이사회에서 형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혁은 기업 성과 향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삼성전자는 현재의 지배구조로도 반도체 세계 1위, 휴대전화 2위 등 충분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14일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개정안 토론회'에 참석한 공정거래위원회 이동규 정책국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이렇게 논쟁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는 공정위가 지난 6일 국회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과 관련, 각계 의견을 수렴해보자는 취지에서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 의원이 공동제안해 이뤄졌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 간 시각 차이가 워낙 커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출자총액제한제=공정위는 각 그룹들이 순자산의 25% 이상을 계열사 자본금으로 출자해선 안 된다는 출자총액제한제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대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출자는 허용하는 등 몇가지 예외 조항을 개정안에 담았다. 이에 대해 전경련 양금승 기업정책팀장은 "이 제도는 기업들의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항석 공정위 독점국장은 "2000~2001년 그룹들의 출자액은 급증했지만, 투자는 오히려 산업 전체 평균투자율보다 낮았다"며 "출자총액규제가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의결권 축소=공정위는 자산 2조원 이상의 그룹에 대해 금융.보험 계열사들은 다른 계열사 주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의결권은 15% 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현재는 30% 내에서 의결권이 인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에선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장 국장은 "금융.보험사가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13개 그룹 33개 상장계열사의 경우 단일 외국인이 1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은 4개에 불과하다"면서 "현실성이 거의 없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이 상무는 "SK㈜의 주식을 매집했던 소버린의 사례처럼 단일 외국인 지분율이 순식간에 국내 대주주의 지분율을 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계좌추적권=지난해 말까지 공정위는 그룹들의 부당내부거래를 적발하기 위한 계좌추적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올 들어 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공정위는 이 권한을 다시 달라는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병주 공정위 조사국장은 "아직도 부당내부거래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경제연구원 이인권 법경제연구센터장은 "부당내부거래는 지난해는 42개 기업, 9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고 반박했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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