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엄마야, 누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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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함성호(1963~ ) '엄마야, 누나야' 부분

누나야, 사는 게, 왜, 이러냐
사는 게, 왜, 이리, 울며, 모래알
씹듯이 퍽퍽하고
사는 게, 왜, 진창이냐
엄마야, 누나야
이젠, 웃음마저도 시든 꽃처럼
무심한 손길도 왜 가슴 데인 화열처럼
왜, 쉬이 넘기지 못하고, 가벼이 사랑치 못하고 말이다
(중략)
사는 게 왜, 이리, 숨막힌 것인지 엄마야
강변에 햇살이 표창처럼 반짝일 때
누나야
저 억장 무너지는 바다에
물안개가 니, 부서지는 웃음처럼
번져올 때
나는 이 악물고 이 모든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엄마야, 누나야
네 얼굴에 박힌 웃음이
언 강 물밑처럼 풀려나갈 때까지
모든 꽃들은 사기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던 소월의 노래는 오늘날 이렇게 변주된다. "엄마야, 누나야, 사는 게, 왜, 이러냐." 가난과 고통에 꽃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입 속에는 슬픔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리고, 갈잎의 노래 대신 골목으로 지쳐 돌아오는 발소리. 여름에도 녹지 않고 박혀 있는 얼음조각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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