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탐방, 명사를 만나다 ⑦ 류춘수 이공건축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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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탐방, 명사를 만나다⑦ 류춘수 이공건축회장
훌륭한 건축가가 되려면, 사고·분석력 키워야

‘직업 탐방, 명사를 만나다’ 일곱 번째 주인공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류춘수 건축가.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로 손꼽히지만 한국적인 감수성과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그를 김유현·박정빈(18·보성고3)군이 만나봤다.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의 사무실 내부는 전통 한옥을 빼닮은 외관과는 달리 심플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다. 동양적 아름다움과 서구적 합리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그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류 회장은 “내 아들도 고3 때 건축가가 되고 싶어했다”며 두 학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류 회장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 현재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군이 먼저 “대학원에서 조경학을 공부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말문을 열었다. 류 회장은 “건축은 인테리어나 조경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일”이라고 답했다. 건축은 단순히 집만 설계하는 일이 아니다. 집을 짓기위해서는 먼저 지반상태나 채광, 조망, 법률등을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 사람과 물건의 움직임, 냉난방시스템은 물론 유리와 시멘트, 나무, 흙, 돌 등 각종 재료들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건축물을 얼마나 아름답게 지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처럼 건축은 기능적 측면과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박군은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류 회장은 웃으며 “원래는 그림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대에 가려고 했는데 미대에 떨어져서 건축과에 갔다”고 고백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물리지구과학을 좋아하고 그림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이런 자질을 두루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하다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림 그리기에는 자신 있다는 두 학생에게 류 회장은 “훌륭한 건축가가 되려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능력 외에도 수학적 사고력과 분석력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류 회장은 한국의 미를 살린 독특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88올림픽 체조 경기장, 한계령 휴게소, 리츠 칼튼 호텔, 중국 868 타워, 지하철 경복궁 역사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방패연모양의 경기장, 막 건축물과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는 모두 오랜 고뇌의 결과. 류 회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끊임없는 생각의 축적”이라고 강조했다. 멋진 건축물은 단 한 번에 그려지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 ‘번뜩’ 떠오르게 된다. 그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당부하며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색다른 방식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보거나 정면에 있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그리는 연습을 해보라”고 귀띔했다.
 
책만 들여다보고 외국에서 똑같은 건물만 보고 온 사람은 평범한 건축가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다양한 자극에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은 멋진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 류 회장은 대학시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산천과 사찰등을 관찰한 덕분에 자연재료를 가장 잘 활용하는 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건축은 특정 시대와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 전부이기에 건축가에게는 당연히 인문사회적인 소양이 요구된다”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다독(多讀)으로 마음을 살찌우라”고 조언했다.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은 주인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사람, 그 건물을 쳐다보는 사람에게도 만족과 기쁨을 줘야 한다. 과학이나 예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 월드컵 경기장 역시 아름다움에 앞서 선수와 관객에게 편리함을 주려고 했기에 세계적인 경기장으로 손꼽힐 수 있었던 것이다. 류 회장은 두 학생에게 사인을 해주며 “강인한 체력과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건축가가 돼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건축물을 지어보라”고 격려했다.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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