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은 국정 쇄신하고 야권은 혼란 부추기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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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나자 정국이 불안한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 쇄신,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대검중수부장의 파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검찰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와 ‘천신일 특검’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강경 시민단체 세력과 진보 정당·노조·학생 그룹은 추모 집회 등을 계속 추진하면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일부 과격한 시위대는 각목을 휘두르고 경찰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선 다각적인 수습 방안이 필요하다. 우선 검찰 수사 부분이다. 검찰은 가족의 달러 수수를 노 전 대통령이 알았다고 보고 ‘포괄적 뇌물수수죄’라고 예단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러나 검찰은 소환조사를 통해서도 노 전 대통령이 알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영장 청구 여부도 마냥 늦추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부끄러운 혐의 사실이 연속 흘러나왔다. 이런 것들을 놓고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는 맞지 않는 무리한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선 관계 당국이 점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그동안 관행으로 이루어져 왔던 ‘피의 사실 공표’에 대해서도 검찰과 언론 간에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수백만 명의 조문 행렬은 기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너무 슬프고 충격적인 탓이다. 그러나 행렬에는 정권에 대한 실망과 반감도 적잖이 들어 있다.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민성’에 감동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평범한 국민을 위한 정책·소통에서 적잖은 아쉬움을 남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친이·친박 간 끊임없는 갈등, TK 등 특정 그룹을 위한 인사 편중, 한나라당의 여전한 ‘웰빙(wellbeing) 성향’과 당정 혼선 등은 국민의 실망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은 정말 심기일전해 설득력 있는 국정 쇄신책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 세력도 혼란을 부추겨선 안 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 보복이 부른 억울한 죽음’이라고 했다. 정권이 촛불로 궁지에 몰리자 노 전 대통령을 제물로 삼았다고도 했다. 이는 사실을 호도하면서 전직 대통령의 충격적인 죽음을 ‘정략의 제물’로 삼으려는 선동성 발언이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가족의 혐의가 드러날 때는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다가 뒤늦게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는 모두가 차분하게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의 국정 수습 노력을 지켜봐야 한다. 여야는 조속히 국회를 열어 민심 수습과 시급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근거 없는 혼란의 불씨가 된다면 그것은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