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우호적 관계라도 중국, 북핵 반대는 분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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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호 08면

198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핵과학 분야 주역으로 일하다 정치가로 변신한 뒤 푸둥과 상하이 ‘천지개벽’을 주도한 자오치정(69·사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 방한했다.

핵 물리학자 출신 중국 政協 상무위원 자오치정

빌 그레이엄의 후계자로 꼽히는 미국의 신학자 루이스 팔라우(75)와의 대화록 『강변대화』(웅진지식하우스) 한국어 출판 기념회 참석을 위해서다. 3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다. 팔라우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63년부터 84년까지 중국 핵무기공업부와 항공우주부 등 핵물리학응용기술 분야의 연구 책임자로 있었다.

먼저 “핵과학자로서 북핵 실험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중국은 다른 많은 나라와 입장이 같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확산에 반대하며, 한반도의 비핵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북·중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관점을 밝히지 않을 순 없다.”

98년부터 2005년까지 우리의 정부 대변인 격인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임으로도 일한 그답게 답변은 간결하고 정리돼 있었다.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가 생산된다면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그러나 “압력을 가하면서도 후퇴할 공간도 동시에 줘야 한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한 중국 입장을 반영한 언급이다.

“팔라우와 대화를 통해 문명 간 대화와 관용만이 이라크전 같은 불행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그는 “29일 서울에서 종교 간 관용의 현장을 보고 감동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장면이다.

“TV를 통해 천주교·불교·기독교 등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추도하는 모습을 봤다. 유일신을 강조하는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고,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른 중국의 역사를 통틀어 종교 전쟁은 없었다”고 소개한 그는 “종교적 관용 정신은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만의 덕목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덧붙였다.

“중국에 신앙이 없다는 주제를 논하는 자리였다. 나는 논어 가운데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란 금언을 소개했다. 그랬더니 팔라우는 기독교의 황금율로 인정받는 마태복음서의 말씀 ‘네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을 대하라’로 응수했다. 서구와 아시아가 공통의 정신가치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미국과 유럽·남미 지역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출간된 『강변대화』는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온 핵물리학자 자오와 세계적 부흥 전도사인 팔라우가 기독교와 동서양의 철학·문화를 놓고 시공을 오가며 팽팽히 맞붙은 설전의 기록이다.

2005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베이징 방문 시 민간 수행인으로 합류한 팔라우 목사를 자오가 의전상 마중을 나가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됐다. “성경을 읽어 봤느냐”는 얘기로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이어졌다.
“영혼이 의지할 곳이 없는 무신론자는 고독하다”(팔라우),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하느님을 몰랐지만 그들의 정신은 놀랄 만큼 뛰어나다.”(자우).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영적인 계시다.”(팔라우), “‘성경’은 하느님의 존재를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들이 쓴 집단 창작물일 뿐이다.”(자우).

『강변대화』 3장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우 “2000년 전 장자와 혜자라는 사상가가 호량 강변을 산책하다 물고기들이 노니는 것을 봤다. 장자가 말했다. ‘저기 보게. 물고기들이 즐겁게 노닌다네.’ 혜자가 말하길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이에 장자는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가’라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의 화법을 써서 당신(팔라우)에게 묻겠다. 당신은 무신론자가 아닌데 어떻게 무신론자가 고독하다는 사실을 아는가.”

#팔라우, “사람은 지적인 충족감을 느낀다. 어떤 이는 낚시질을 하면서, 어떤 이는 지식의 바닥에서 헤엄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영혼과 정신세계에서 볼 때 그는 마른 땅 위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장자와 혜자가 ‘호량 물가에서 나눈 대화’에서 보여준 성숙한 대화를 기리며, 자신들의 대화를 담은 책 제목을 『강변대화(江邊對話)』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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