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문명이 앞으로 갈 때 삶의 질은 뒷걸음질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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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명에 반대한다
 존 저잔 지음, 정승현·김성우 옮김
와이즈북, 463쪽, 2만5000원

고대 이후 문명의 해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아낸 의미 있는 저술이다. 물론 서양 쪽의 50명 저자의 50개 글을 모은 번역서인데, 생각 이상으로 노장(老莊)사상과 닮았다. 반(反)문명 이념의 스펙트럼이 엄청 넓고 다양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자연 찬가에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시각에 이르기까지….

즉 문명 비판은 환경·생태문제 주변를 맴도는 게 전부일 것이라는 당신의 오랜 통념을 날려주는 것만으로 일단 의미가 있다. ‘환경+무정부주의’의 그린 아나키즘의 경우만해도 분업과 컨베이어벨트 위주의 생산방식에 대한 비판은 물론 종교·신앙 차원의 현실 비판으로 치닫는다. 일테면 국가주의라는 권력의 미망(迷妄)에 대한 비판에서 ‘악명 높은’ 유나버머의 글을 접할 수 있는 게 이 책이다.

유나버머는 “악취 나는 산업·기술체계를 모두 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16세 나이에 하버드대학에 조기 입학했던 수학 천재였고, 스물다섯 살에 버클리대 종신교수로 임명되었지만, 종적을 감춘 뒤 대학·공항에 16차례 우편 폭탄을 보냈던 문명비판의 예언자 테러리스트. 아쉽다면 50꼭지의 글들은 책으로 치면 5~6쪽 분량이라서 ‘읽다보면 끝인’ 게 흠이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농경생활과 더불어, 예술과 정치, 문화 등 인류문명이 비롯되었다. 사진은 농경생활 이전의 수렵채집 생활을 보여주는 스리랑카 어린이들의 고기잡는 모습. 배 없이 코코넛 나무로 만든 막대 위에서 물고기를 낚는 전통 방법이다. [와이즈북 제공]

아주 범속하게 말하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이 이 책의 목표다. 하지만 일관된 특징은 원시주의(primitivism)로 모아진다. 문명이 진보하면 할수록 인류의 삶의 질은 퇴보한다는 것인데, 그 논거가 무척 탄탄하다. 보통은 인류역사에서 농업의 등장은 낭만적으로 색칠되기 십상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적 삶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곡물수확으로 전환함으로써 인류의 진보가 이뤄졌다는 식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의 엮은이인 존 저잔에 따르면 그건 말도 아니다. 농업의 등장은 인류사의 재앙이었음을 알려준다. 수렵채집 당시 인류는 다양한 음식물 섭취로 신체가 건강했으나 농업의 시작과 함께 망가지기 시작했다. 만성질환도 늘었다. 그게 고대 병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요즘 내린 결론이라는데, 반문명론자들의 신념이 이제는 학문의 외양을 갖춰가고 있는 게 주목거리이고 그 강력한 징후가 이 책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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