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없어 수출 못한다…원자재 수입줄어 선박구하기 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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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일 오후 인천항 제4부두 야적장. 7백여대의 수출용 중고자동차들이 먼지를 뽀얗게 덮어쓴 채 서있다.이곳에서 약 5백m 떨어진 제2부두에도 5백여대의 중고차들이 야적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인천항 야적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수출용 중고차는 줄잡아 3천5백여대. 대부분 칠레 등 남미행인데, 이곳에 온지 최고 한달 가까이 됐지만 아직 배를 기다리는 신세다.앞으로도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기약도 없다.

범양상선 김정균 과장은 "선박을 못 구해 실어보내지 못하고 있다" 면서 "남미쪽 수출은 거의 중단된 상태" 라고 설명했다.하역업체인 ㈜동방 인천지사 한주석 소장도 "수입이 줄어 가뜩이나 일이 없는데 배가 모자라 수출까지 못할 지경이 됐다" 고 푸념했다.

환율상승 덕에 수출 주문은 늘었지만 배를 못구해 제때 선적하지 못해 호기 (好機) 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특히 철강재.비료.시멘트.중장비.중고차 등 덩치큰 물건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살물선) 을 비롯한 일반화물선 부족현상은 심각하다.

현대상선 일반화물부 최성웅씨는 "요즘은 배 수배하느라 매일 밤새도록 세계 각국의 브로커.선사들을 접촉하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고 어려움을 토로했다.이처럼 배가 부족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수입이 위축되면서 동남아 등지로부터 원자재 등을 싣고 국내로 들어오는 배가 줄었기 때문. 부산항의 경우 올 1~2월중 입항 외항선은 2천8백11척으로 지난해보다 4.5% 감소했다.

반대로 수출물량은 늘다 보니 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것. 그렇다고 빈배를 들여와 수출할 경우 운임을 평균 25~30%는 더 줘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아 그럴 수도 없다.한진해운 김남주 부장은 "종전 가격으로는 배를 구하기 어렵고, 오른 가격으로는 도저히 채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업체들이 적당한 값에 배 구할 때까지 수출을 미루고 있다" 고 설명했다.

철강업체 M사는 지난달말 유럽의 수출물량을 확보하고도 추가 선임을 감당할 수 없어 수출을 보류하기도 했다.이런 현상이 심화되면서 2월말부터는 용선료가 전반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유럽으로 가는 2만4천t급 벌크선의 경우 용선료가 종전에는 하루 5천달러면 충분했으나 최근에는 9천달러까지 치솟았고, 이에 따라 철강재 1t 운임도 25달러에서 33달러로 올랐다.

배뿐 아니라 컨테이너도 부족해 확보가 전쟁이다.최근에는 아예 개당 4백달러 이상 추가비용을 들여가며 빈 컨테이너를 무더기로 수입해오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 어렵다는 것. 삼성물산 철강사업부 관계자는 "용선료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운임 인상으로 이어질 이달부터는 선박부족 및 수출차질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 이라고 우려했다.이에 대해 한국해양수산연구원 한철환 연구원은 "원자재 수입이 정상화돼 선박이 많이 들어오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고 말했다.

인천 =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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