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네 편 말고 하나 돼 보내드렸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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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된다. 영결식 뒤엔 서울광장에서 노제(路祭)가 열린다.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이 끝나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정토원에 안치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권양숙 여사가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헌화한 뒤 조문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사회복지사 장시아(24·여)씨는 이날 서울광장 제단에 선다. 노제 끝 무렵에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하기 위해서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쪽방촌의 희망’으로 불렸다. 쪽방촌 단칸방에서 살던 장씨의 세 식구는 2006년 정부가 내 준 세칸짜리 임대 빌라로 이사갔다. 쪽방촌 삶을 써 내려간 그의 책 『까치집 사람들』에 노 전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며 그는 노무현 정부 서민 정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유명해진 덕분에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되기도 했다.

“처음 장의위원회 측의 낭독 제의를 받고 많이 망설였어요.” 28일 서울 개포동 하상장애인복지관 근처 식당에서 만난 장씨는 한참을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 “순수하게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낭독하는 건데, 정치적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웠거든요.” 하루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리고 27일 장의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낭독하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제 책 중에 가장 좋다고 하신 글귀가 있어요. ‘행복한 사람이 많기보다 불행한 사람이 없는 나라, 즐거운 사람이 많기보다 외로운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자’는 부분이요. 노 대통령이 원하시는 건 네 편 내 편 따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되어 함께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그는 유서 낭독에 나섰다고 한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편을 나누지 말고 하나가 돼 보내드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씨가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2006년, 주거복지정책 토론회에서였다. 그는 임대주택 수혜자 대표로 그 자리에 있었다. 토론회에서 장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쪽방촌 시절의 기억을 담은 자신의 시집 『그늘이 더 따뜻하다』를 선물했다.

장씨는 뺑소니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그 일로 세 식구가 쪽방촌까지 밀려간 사연, 화장실도 창도 없던 쪽방촌의 어두운 풍경을 시로 썼다.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아버지를 부축해 공동화장실을 다녀야 했다.

“쪽방촌서 살던 내게 따뜻한 격려 … 그분, 언제나 든든한 벽 같으셨죠”

2006년 주거복지토론회서 당시 노 대통령과 첫 만남

“언제나 용기 잃지 말고…” 두 차례 희망의 편지 받아

장시아씨가 28일 자신이 일하는 복지관 인근 공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낸 격려 편지를 읽고 있다. [박종근 기자]

  친구들에게 ‘쪽방촌 거지’라며 놀림을 받아야 했던 장시아(24)씨는 그 후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토론회 몇 달 뒤 그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따뜻한 글이 격려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용기를 잃지 말고 밝은 희망을 가꾸어 갑시다’라는 편지 말미엔 노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든든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어 편지를 꼭 안고 있었다”고 장씨는 회상했다.

그는 다음 해에 새로 낸 산문집 『까치집 사람들』을 청와대로 부쳤다. 노 전 대통령은 장씨의 책 2권을 국무위원들에게 나눠 줬다. 그러곤 두 번째 편지가 왔다. ‘장시아씨 이야기는 사람과 세상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대통령으로서 역량이 모자라 사람들을 다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장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내게 그랬듯 나도 그분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의 인연이 주목을 받으면서 고민이 생겼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주택공사 홍보대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노무현 라인이라 그런 거냐” "노사모냐”라며 빈정댔다. 장씨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 최근 한 지인은 “(영결식에) 파란 옷을 입고 갈 거냐”고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물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 대통령을 믿고 따르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과 관계없이 저를 이편 저편으로 갈라버리는 사람들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유서 낭독을 고민하며 노 전 대통령이 보낸 친필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마음은 더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분이 계시다는 생각에 항상 든든했는데, 믿었던 만큼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실망이 컸던 게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려 준 건 노 전 대통령의 두 번째 편지였다. ‘장시아씨가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장시아씨가 성공하고 또 다른 장시아씨가 성공하고 그러면 좋은 세상이 더 빨리 올 것입니다’라는 구절을 장씨는 소리 내어 읽었다. “이게 노 전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기에 포기할 수도, 희망을 버릴 수도 없어요.”

장씨는 노 전 대통령을 “든든한 벽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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