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과제’ 떠안은 여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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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긴급 의원총회가 28일 국회에서 열렸다. 박희태 대표(右)를 비롯한 의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뉴시스]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다. 서울광장에서의 노제도 예정돼 있다.

정치권에선 “상당히 많은 국민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켜볼 것”이라고 본다. 지금껏 추모 열기를 감안하면 그렇다. 28일까지 정부의 공식 분향소를 찾은 사람이 50만 명이다. 봉하마을과 덕수궁 분향소 등까지 포함하면 300만 명이 넘는다는 게 노 전 대통령 측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5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도 한다. 국민 10명 중 한 명꼴로 분향소를 찾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의도 사람들은 “요즘처럼 사람 모으기 힘든 시대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놀라고 있다. 공개적 발언은 꺼리지만 사석에선 논의가 활발하다. 조문 행렬에 깔려 있는 메시지는 뭘까.

민주당 의원들이 28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헌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민심이 흘리는 눈물 의미 알아야”=노 전 대통령은 색채가 분명한 정치인이었다. 탈권위와 서민 행보 등 지향하는 바도 뚜렷했다.

김영삼 정부 사람인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노 전 대통령은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목표로 했던 걸 다 달성했고, ‘이 나라는 기회주의자가 성공한 나라’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할 정도로 말과 행동이 자유로웠던 사람”이라며 “그에게 메시아적 기대를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겐 상징이었다”고 봤다.

단국대 가상준(정치외교학)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에 대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보면서 ‘다른 정치인과 다르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란 얘기를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는 거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와는 대비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통합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역지사지를 해야 하고 민심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숭실대 강원택(정치외교학)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답답하고 억압적인 데다 부자·친기업 정부 같고 (서민들로선) 노무현 정부와 달리 신경을 안 써주는 것처럼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 운영 기조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 불신의 정도 느껴야”=추모 열기를 주도한 건 시민들이었다. 분향소가 일종의 ‘소통의 장’이 됐다. 서울광장도 다시 열었다. 민주당 인사들이 ‘상주’ 역할을 했다지만 주역은 아니었다.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 인사 대부분은 아예 봉하마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가상준 교수는 “현실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참배 흐름에 있다”며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번 기회에 느끼지 못하면 기존 정당들로선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권은 특히 ‘광장’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와 올 초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 등으로 경험한 바다.

강원택 교수는 “몇만 명이 아닌 300만 명이 움직였다는 게 중요한 메시지”라며 “노 전 대통령 지지자나 진보 진영 등 일부가 주도한다고 바라보면 문제 해결이 안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정치학자는 “현재로선 추모 열기가 심정적 동조로 보인다”며 “이를 가라앉힐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바닥 민심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결국 대통령의 권한이 커서 반복되는 불행인 만큼 차제에 개헌 논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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