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뿔난 집”으로 불린 구한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며 총본산이었기에 그 영욕의 역사를 대표한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천주교 주교회의는 ‘쇄신과 화해’라는 제하의 참회문에서 일제하 독립운동을 돕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협력했던 부끄러운 교회사를 성찰하였다. 그러나 명동성당이 욕된 역사의 구심 축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개발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0년대 이후 명동성당은 “시대의 요구와 아픔, 민중의 눈물을 품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모태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이 영혼의 구원을 위한 신앙의 터를 넘어 “한국 사회의 고뇌와 눈물이 밴 정의의 보루”이자 “민주화의 성지”였던 그 시절.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불의와 폭력, 인권침해 등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하는 악에 예언자적 소명의식을 갖고 당당히 맞선” 김수환 추기경이 그곳에 항상 있었다. 교회의 지도자를 넘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우뚝 섰던 큰 어른 추기경. 분열과 갈등을 넘어선 화해와 사랑을 몸소 실천한 그의 빈자리와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세요”라는 마지막 말씀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