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대학강사 길인배씨, 맹인견 덕에 되찾은 '제2의 삶'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31일 오후 강원도춘천시 강원대 교양학부 '법과 사회학' 강의실. 1백37명 학생들의 시선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강단에 선 시각장애인 길인배 (吉仁培.52.춘천시효자동) 박사의 열강에 쏠려 있고 강단옆에는 맹인안내견 '위대' 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침술원 원장이기도 한 길씨가 정상인과 똑같이 강의를 해 후학을 가르치는 소망을 이루게 된 것은 아무래도 지난해초 삼성 맹인안내견학교에서 한달간 합숙훈련끝애 분양받은 안내견 위대 덕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젊었을 적 비오는 날, 자주 하수구에 빠져 '하수구박사' 라는 별명까지 얻게된 그는 위대를 통해 '발걸음의 자유' 를 얻었고 이처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 둘 이루어나가고 있기 때문. 강원도화천생인 길씨가 앞을 못보게 된 것은 여섯살이었던 6.25때 영양실조로 한달간 눈을 못뜬채 앓고나서부터. 이후 길씨는 '장애인은 남의 도움없이 생활하기 어렵다' 는 주변의 의식을 바꾸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강원대를 수석으로 입학.졸업했다.

맹아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75년 역시 장애인학교 교사이던 김용남 (金龍男.46) 씨를 만나 결혼한 길씨는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침시술원을 차렸고 이제는 춘천에서 알아주는 침구사가 됐다.

생활이 안정되자 86년 대학원에 입학, 10년만에 강원대에서 '장애인 고용제도에 관한 연구' 라는 논문으로 맹인으로서는 처음 법학박사를 받았고 갖은 노력끝에 96년 하반기부터 모교강사로 나섰다.

그러나 강단에 섰다고 해서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또 다른 벽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 그는 "강의가 있는 날이면 오전내내 외출준비를 하느라 아내가 목욕탕.이발소를 데리고 다녀야 했고 식은땀을 흘리며 불규칙한 학교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유혹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고 했다.

그러나 위대와 함께하고부터는 혼자서 모든 일이 가능해졌다."위대덕분에 생전 조깅이라는 것도 처음 해봤습니다.함께 달리며 땀을 흘리고 나면 남의 도움없이 혼자 다닐수 있는 자유의 기쁨이 온몸을 감쌉니다.그런데 아직도 맹인견을 보통 개로 취급, 태워주지 않는 운전사나 입장을거부하는 공공공기관이 있는게 가슴아픕니다."

그는 진료중 틈나는대로 보고 싶은 책을 한페이지씩 넘겨가며 컴퓨터에 연결된 문자스캐너를 통해 읽어들이고 이를 음성전환소프트웨어로 들으며 최근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길씨의 이런 집념은 맹인용 지팡이를 거부한데서도 나타난다.'하수구박사' 로 불리게 된 것도 자존심이 상해 지팡이를 마다한 결과. 최근에는 위대와 함께 매주 춘천교도소를 방문, 교정강의도 하고 있는 길씨는 "외관상 장애보다 자신만을 알거나 남을 해치는 마음속의 장애가 더 큰 문제" 라며 "이제 위대가 준 자유를 나보다 어려운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데 쓰겠다" 고 말했다.

춘천〓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