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만든 세태 '너죽고 나살자'…경쟁업체 '음해'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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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출판유통업체인 H사 사장 韓모 (50) 씨는 최근 극심한 불황에다 경쟁업체들이 악성루머를 퍼뜨리는 바람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불황이긴 하지만 부채비율이 낮아 큰 어려움 없이 회사를 운영해왔으나 경쟁업체에서 "H사도 곧 망한다더라" 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린 것. 이같은 소문이 퍼지자 출판사들로부터 책 공급이 중단된 것은 물론 거래업체마다 한결같이 당장 부채를 갚을 것을 요구하고 나서는 바람에 韓씨는 회사 업무는커녕 거래업체 설득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韓씨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근거없는 소문 한마디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며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를 맞아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멀쩡한 회사를 음해하는 경쟁업체들의 횡포를 원망했다.

검찰이 지난 1월 증권사.할부금융사 직원 등 6명을 구속하는 등 집중단속에 나서자 수그러든 것 같았던 기업체 대상 악성루머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의 루머가 주로 주식작전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의 것은 주로 경쟁업체에 타격을 입히려는 것이 특징. 불황기를 틈타 조작된 부도설 등을 유포함으로써 경영상태가 어려워진 경쟁업체를 아예 쓰러뜨리거나 고객을 흡수해 반사이익을 보자는 것이다.

지적소유권이 소멸된 음반을 복각해 판매하는 중소음반업체 A사의 경우도 최근 대형업체들의 음해와 방해공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A사 관계자는 "광고비를 줄이는 등 거품을 빼 비교적 싼 가격의 음반을 내놓자 대형업체들은 일반 소매상과 대형 음반판매장 등을 돌며 'A사가 불법복제한 음반을 팔고 있으니 물건을 받지 말라' 며 반협박성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 며 "이같은 음해공작을 뻔히 보면서도 골병이 들고 있다" 고 말했다.

또 일부 은행이나 보험.증권사 등도 '모투자신탁회사가 한달안에 망한다' 거나 '부도를 냈다' 는 근거없는 루머를 퍼뜨려 고객을 빼가고 있다.

이들 금융회사는 아예 점포에 이같은 내용을 게시하거나 보험설계사 등을 통해 고객들을 상대로 음해성 루머를 유포하는 등 그 수법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정제원.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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