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법조비리]하.취약한 자정기능…솜방망이 징계로 '고질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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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의정부지원 판사 비리 사건이 터지자 법원행정처의 한 고위 간부는 "전에 말썽을 일으킨 판사들을 엄하게 문책하지 않고 쉬쉬하며 감싼 것이 더 큰 화를 불렀다" 며 후회했다.

의정부지원에서는 96년에도 일부 판사들이 몇몇 변호사들로부터 접대를 받으며 형사사건에서 편의를 봐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상급법원의 조사 결과 판사 몇명의 비리가 드러났지만 조용히 시.군법원으로 좌천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판사들 가운데 일부는 이번 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때 법원이 정확하게 진상을 파악해 공개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강력히 시행했더라면 판사 15명이 연루된 이번 사태는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검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순호변호사로부터 술대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게 된 의정부지청 宋모 검사는 94년 피의자 구타시비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법조계는 내부 비리에 대한 예방.감시장치가 미흡하고 드러난 문제에 대한 사후조치도 온정적이라는 지적이다.

내부문제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쉬쉬하며 감싸기에 급급했다.

오히려 실비 (室費) 관행.전관예우 등 법원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판사들이 내부적으로 '이단자' 취급을 당하거나 신평 (申坪).방희선 (方熙宣) 변호사처럼 재임용에 탈락해 법원을 떠나야 했다.

그동안 문제를 일으킨 검사들은 징계만으로 넘어갔고 판사들도 사표만 내면 더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검사들의 경우 1년에 한두명 정도 징계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개인적 비리로 징계를 받은 판사는 현재까지 한명도 없다.

특히 징계를 받은 판사가 없었던 이유는 '남들이 선망하는 판사직 사퇴만으로도 충분한 문책을 했다' 는 사표 만능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서울지법의 한 소장판사는 "판사들이 변호사들로부터 실비 등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위험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 라며 "최악의 경우 변호사를 하면 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말했다.

예방.단속활동도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검사들에 대해서는 대검 감찰과가 진정.투서 등을 근거로 감찰활동을 하지만 결과를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 실정이고, 법원에는 판사들에 대한 감찰기구가 없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독자적 재판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며 판사 감찰기구 설치에 부정적이다.

대검 김태현 (金泰賢) 감찰2과장은 "판사.검사.변호사들이 전체적으로는 우수한 집단일지 몰라도 문제를 일으키는 구성원은 있게 마련이다.

내부적으로 감찰과 징계를 강화해 끊임없이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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