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고민 문자 상담 살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사례1. "남자친구가 자꾸 성관계를 요구해요."

부산에서 자취를 하는 여고생 김지연(가명·18)양은 두 살 위 남자친구가 자꾸 성관계를 요구해 괴로워하다 결국 헤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남자친구가 집에 불쑥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밤에 혼자 자다 보면 남자친구가 몰래 들어와 옆에서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남자친구의 부모에게 연락해도 "내 아들이 그럴 리 없다"며 믿지 않았다. 참다 못한 김양은 지난 4월 청소년 문자 고민 상담센터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저 어떻게 해야 하나요'. #1388로 전송하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쉼터를 연결해 드릴게요'. 김양은 이후 상담원과 몇 차례 연락한 끝에 지금은 아는 언니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 사례2. “왕따 당해 죽고 싶어요.”

충북에 사는 여중생 이지영(가명·15)양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마저 다른 친구와 어울려 이양은 외톨이가 됐다. 지난달 13일 오전 이양은 '학교에서 도망쳤는데 갈 데가 없다'는 문자를 상담 센터로 보냈고, 상담원은 '침착하게 생각하라. 도망치지 말고 마음을 돌려 보라'는 내용의 답문자로 이양을 안정시켰다. 이양은 지난 20일 상담센터로 안부 문자를 보냈다. “떠나갔던 친구가 먼저 사과했어요.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 사례3. "담배를 못 끊겠어요."

부산의 여중생 백나리(가명·16)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친구들도 담배를 피우고 있어 끊기가 쉽지 않았다. 백양은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지난 4월 상담 센터로 '담배 끊는 방법이 없느냐'고 문자를 보냈다. 상담원은 즉시 해당 지역 보건소의 청소년 금연지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백양은 "그런 정보도 있느냐"며 놀랐고, 현재는 담배를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문자 서비스 '#1388'에 최근 접수된 내용이다. '#1388'은 전문 상담원들이 24시간 대기하면서 청소년들이 고민 문자를 보내면 2분 내로 답변해 고민 해결을 돕는 서비스다. 주요 이동 통신 3사를 통해 사용하며 정보이용료는 무료다. 신변 노출의 부담이 없는데다 무료기 때문에 이용 건수는 점점 늘고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2007년 1만4842명이던 상담 인원은 지난해 6만1743명으로 늘었다. 상담은 청소년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성 전문상담사, 심리상담사, 가족상담사, 학교폭력예방전문가 등 관련 분야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상담사 40여 명이 진행하고 보건복지가족부가 상담원들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1388+NATE버튼(혹은 통화버튼)'을 눌러 전용 프로그램을 내려 받으면 모바일 채팅 형식으로도 상담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고민은 성적이나 진로 등 학업에 관한 문제가 많지만 이성이나 흡연 문제 등도 적지 않았다. '#1388'을 운영하고 있는 동서남북모바일커뮤니티에 1월부터 5월까지 접수된 상담 내역을 보면 총 60153건 중 학습·진로 문제가 9362건(15.6%)으로 가장 많았고 2위는 성 고민 등 이성 문제가 8606건(14.3%)이었다. 친구나 왕따 8286건(13.8%), 우울증 5278건(8.8%), 흡연 등 비행이 216건(0.4%), 자살 문제가 222건(0.4%)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살에 관한 고민이 부쩍 늘었다. 1월 22건이었던 자살 고민 건수는 2월 47건에서 4월에는 60건이 접수됐다. 대구에 사는 여고생 김나라(가명·19세)양은 지난달 자살 시도 직전 상담 센터로 문자를 보냈다. '삶이 공허하고 우울해요.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상담원은 김양과 통화하며 왕따 이야기, 가족사 등 자세한 사연을 들었줬고, 김양은 현재 대구청소년지원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광주에 사는 고교생 유민호(가명·17)군은 지난 3월 '죽을 예정이니 경찰을 불러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몸이 안 좋아 입원 중인데 부모님이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해서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상담원은 수소문 끝에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하며 겨우 유군을 달랠 수 있었다.

동서남북모바일커뮤니티의 조진서 사업본부장은 "자살 상담 등 고민을 의뢰하는 청소년은 누가 옆에서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는 공통점이 있다"며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