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클리닉] 거창한 꿈보다 눈에 보이는 목표를 제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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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이렇다니까요! 아무런 목표가 없어요.” 상훈이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지난해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한 달 앞두고 엄마는 제안을 했다. “상훈아, 이번 기말고사에서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네가 갖고 싶어 하던 그 휴대전화로 바꿔줄게.” “정말? 진짜지!”

그러곤 상훈이가 열공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상훈이가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엄마 20등 안에 들면 사주면 안 돼?” “야! 너 중간고사 때 24등이었는데 고작 20등이라고? 안 돼.”

그래도 엄마는 한번 더 협상을 해본다. “좋아. 15등 안에 들면 사주마.” “야호!” 상훈은 신바람이 났다.

기말시험이 하루 앞으로 닥쳤다. 내일 첫 시험은 수학과 기가(기술가정)인데 상훈이는 뒹굴뒹굴하며 판타지 소설만 봤다. 보다 못한 엄마는 한마디 하셨다.

“야! 너 그렇게 해가지고 15등은커녕 20등이나 하겠느냐?”

“걱정 말라니까.” 다음 날 상훈이는 시험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한눈에 봐도 시험을 망친 것 같다. 엄마는 힘을 돋우기 위해 “상훈아! 괜찮아. 아직 3일 남았잖아. 우리 아들 파이팅!” 그런데 상훈이가 내뱉는 말은 “엄마! 나 새 휴대전화 필요 없어”였다. 아들 힘내라고 했던 말이 화살이 되어 엄마에 꽂히면서 힘이 빠졌다.

상훈이같이 장래 희망이 아예 없거나 혹은 “무조건 돈 많이 버는 거요”라는 말을 하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필자는 처음에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면 좋은 점 100가지” “친구를 선의의 경쟁자로 삼아라” 또는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no pain, no gain)”라는 ‘거룩한 말씀’을 목청 높여 외쳐봤다. 하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그래서 필자가 개발한 방법이 있으니 ‘30% 룰(rule)’이다. 가령 30등이라면 다음 시험에는 30% 향상된 21등을 목표로 잡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목표가 너무 소박하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목표만 제대로 달성해도 세 번째 시험에선 무난히 10등 진입이 가능하다.

목표가 없는 아이에게 “정상이 저기”라고 말하는 것보다 성적과 등수가 오르도록 해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존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성적 향상이 이어진다. 동기(목표)가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진리처럼 돼 있다. 그러나 그건 상위권 학생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중하위권 학생에겐 그 반대다. 성적이 올라야 자신감과 동기가 올라간다. ‘무난한 목표→성공→자신감→공부에 대한 열의→성적 향상’이라는 선순환의 고리가 연결되는 것이다. 학습목표는 막연하거나 거창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달성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멀리 보고 쏜 화살이 반드시 멀리 가는 것이 아니며, 무리한 목표는 오히려 좌절감만 안겨줄 뿐이다. 목표는 이루기 위해 세우는 것이지 기분 내기 위해 세우는 게 아님을 명심해 두자.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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