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영화…카타네오감독의 '풀몬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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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루가 다르게 실직자들이 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실직자 얘기를 다룬 영화를 보는 일은 그다지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니. "웃기면서도 가슴 찡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던 어느 감독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말한 영화가 아마도 이런 영화가 아니었을까. 영화 '풀 몬티' (The Full Monty) 얘기다.

이 영화엔 스타배우도 없다.

감독은 피터 카타네오. 역시 낯설다.

이 젊은 감독은 화려한 특수효과도 쓰지않고, 총 한자루도 등장시키지 않는가 하면 그 흔한 러브신조차 넣지 않고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도 시사회장은 환호로 들썩들썩했다.

PC통신에도 격찬이 쏟아졌다.

제작비 3백만달러짜리 영국 영화치고는 대단한 환영을 받은 셈이다.

'풀 몬티' 는 한때 잘나가던 영국 철강도시 셰필드의 경기가 침체하면서 해고당한 철강노동자 여섯 명이 궁여지책으로 스트립쇼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끝무렵엔 팬티까지도 홀딱 벗어던진 그들의 모습이 공개된다.

이쯤되면 '남자 벗기기' 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천박한 영화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렇치 않다.

구경거리로 한 몫하기엔 이 남자들의 얼굴이나 몸매가 너무도 보잘 것 없다.

영화의 흡인력은 여기서 나온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실직자' 로 전락한 사람들의 얘기라는 점에서. 이혼을 당했으나 아들 양육비를 댈 돈이 없는가 하면, 해고의 실의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고, 맘씨 좋은 뚱보지만 아내와의 관계에서 성적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이 등장인물들의 면면이다.

특히 실직당했으나 아내에게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6개월째 계속 출근하며 비애를 삭이는 반백의 제럴드는 우리 현실과 맞물려 여운을 남긴다.

벤치에 앉아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까먹는 그의 처량한 모습에 이르면 감동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영화는 '실직' 과 '스트립쇼' 라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교차하는 소재를 유쾌함과 따스함으로 재치있게 소화해낸다.

유머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남자의 '벗는 행위' 를 통해 드러나는 여성.남성의 육체와 사회적 위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 대목도 눈길을 끈다.

최근 약진하는 영국 젊은 감독의 남다른 수완이 실감난다.

중년남자들의 '스트립쇼' 는 도대체 뭔가? 감독은 이 부분에서 재미와 주제가 결합된 마침표를 확실하게 찍어보이는 역량을 과시했다.

'스트립쇼' 는 곧 희망과 야망, 기회를 박탈당한 그들이 다시 존재를 확립하게 위해 벌이는 노력의 몸부림임인 것이다.

여기서 '옷' 을 벗는다는 것은 물리적 '나체' 의 상황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들을 주눅들게 하는 '위선' 을 벗어버리는 행위이며, '발가벗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자부심을 되찾는 일종의 제의다.

'몽땅 벗는다' 는 뜻의 영국 속어 '풀몬티' 에 담긴 뜻이다.

이 영화는 영국에서 '주라기 공원' 이 갖고 있던 역대 흥행 1위의 자리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도 박스오피스 6위를 기록했다.

'작은 영화' 의 본때를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우리 영화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아이디어' 다.

4월11일 개봉.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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