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앞당겨 축소' 반응]당국·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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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재벌의 부채비율 감축 일정을 3년이나 앞당긴 것에는 구조조정을 서두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투영돼 있다.

은행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불황에서 벗어나려면 기업들이 빨리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며 "시간을 끌면 구조조정이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어 빨리 진척시키자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 물론 은행에서도 현실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적용받는 그룹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4백% 수준. 2년 이내에 이를 2백%로 낮추려면 빚을 절반으로 줄이든지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두배로 늘릴 수밖에 없다.

금액으로는 부채를 약1백50조원 줄이거나 증자를 75조원 정도 해야 하는 셈이다.

물론 은감원은 이를 도저히 지키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능력이 있는 기업부터 먼저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의 자산건전성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은 줄어드는 반면 비우량기업의 대출은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량기업은 빚을 빨리 갚아야 하고 비우량기업은 빚상환을 유예받는 역차별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정부가 강하게 재촉할수록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값은 더 떨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외국투자자들은 국내 기업들이 등 떠밀려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사정을 꿰뚫고 있어 흥정에서 한결 유리한 입장이 됐다.

최근 외국기업에 계열사 매각을 추진중인 한 그룹 관계자는 "상대방이 흥정을 질질 끌거나 값을 후려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 말했다.

한편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금감위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견 (異見) 이 없다" 며 "다만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이 지난해 더 높아졌는데 갑자기 2백% 이내로 줄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 기업이 적응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 이라는 입장이다.

남윤호·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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