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 시론②

‘노무현 추모 열기’의 뒤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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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후일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려야겠지만 적어도 당대에 그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불과 1년 반 전의 대통령 선거 때만 하더라도 노무현은 온갖 원망과 비난의 대상이었다. 당시 우리가 겪었던 정치·경제·사회적 어려움을 ‘다 노무현 탓’으로 돌렸다.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통합을 부르짖었지만 이념적 분열은 오히려 가속화되었고 지역당 구조도 깨지지 않았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부동산값은 치솟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값비싼 정치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퇴직 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는 그의 도덕성에 대해서까지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그랬던 그를 이제 많은 국민이 가슴 아프게 떠나 보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이처럼 애도하는 건 물론 국가 최고지도자였던 그가 이전과 비교할 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사건으로 인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데 대한 인간적 연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막상 세상을 떠나자 의외라고 할 만큼 많은 국민이 그를 그리워하는 건 노무현이라는 지도자가 상징했던 정치적 가치가 요즘 들어 더욱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는 적어도 사회적 약자를 대변했고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었다. 2002년 선거 운동 때 보여준 ‘노무현의 눈물’은 평범한 보통 시민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 그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철벽 같아 보였던 지역주의에 실패를 거듭하며 도전해 온 ‘바보 노무현’은 곧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평검사들과 대화의 자리를 만들고 장관들과 맞담배를 피우는 등 그의 파격적 행보와 세련되지 못한 말투는 적잖은 정치적 파장을 불러오곤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왕적 대통령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익숙해 있던 국민에게 탈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의 신선한 모습을 느끼게 해 주었다.

현재 주요 정당의 지지율은 다 합쳐도 50%를 넘지 못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역시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국민이 정치적으로 마음을 주고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더해진 세계적 금융위기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고 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주거·교육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대한 부담은 커져가지만 쉽사리 희망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어디서도 따뜻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누군가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돌봐 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내 말에 귀 기울이려고 하기보다는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윽박지름과 통제, 그리고 억누름이 앞서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 모두 국민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너무 무섭고 너무 무관심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단절과 불통이 소외감을 낳고 차라리 ‘인간적이었던’ 노무현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빈소를 찾는 이들은 사실 그 스스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찾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나타났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원망은 그가 제시했던 정치 이상과 비전에 대한 거부감이었다기보다는 어쩌면 너무도 절실했던 그 소망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떠난 뒤 빈자리로 오롯이 남아 있는 그에게 걸었던 꿈은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강원택 숭실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