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저격 패러디 '협박미수' 이례적 적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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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대통령 저격 패러디'를 만들어 올린 대학생을협박미수 혐의로 형사입건했다. 수사기관이 인터넷 패러디물에 협박미수죄를 적용하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일 노무현 대통령을 저격하는 합성 패러디물을 제작한 대학생 탁모(21.대학1년)씨를 협박미수 혐의로, 이를 인터넷 매체 '독립신문'에 게재한 신혜식(37)대표를 공모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탁씨는 지난달 19일 "김정일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마를 저격수가 정조준하는 내용을 담은 패러디 만평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하려 했지만 허위사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아 협박 혐의를 적용했다"면서 "그러나 대상자인 노 대통령이 직접 '공포심'을 표현하지 않아 미수로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협박미수는 명예훼손과 마찬가지로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에 해당돼 노 대통령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검찰에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

한 네티즌은 "문제의 저격 패러디가 특정인을 협박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인터넷 문화를 무시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협박미수란 협박을 하려고 범죄에 착수했지만 다 끝내지 못했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다.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미수범의 경우 형량의 절반까지 감경할 수 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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