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 ‘잠깐만’ 하자더니 벌써 19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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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만날 쓰는데도 뜻을 정확히 대기 어려운 말들이 있다. ‘잠깐만’이란 말도 그렇다.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잠깐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길이는 또렷이 가늠할 수 없어도 ‘잠깐만’이란 시간의 힘을 짐작할 순 있겠다. MBC 라디오 ‘잠깐만’ 캠페인 얘기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란 익숙한 멜로디로 시작하는 MBC의 간판 캠페인 방송이다.

◆‘잠깐만’이 쌓여서 역사로=이 방송은 ‘잠깐만’을 55초로 측량해 두고 있다.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캠페인송이 흐르고 내레이터가 이웃 사랑 메시지 등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그깟 55초라고 얕보진 마시라. 잠깐의 시간도 포개고 포개면 역사가 되니까.

‘잠깐만’ 은 1990년 10월 1일 첫 전파를 탔다. ‘잠깐만’의 시간이 어느덧 19년 역사가 됐다. 5만5000회 이상 방송되면서 출연 인원만 2000명이 넘는다. 일종의 ‘대하 캠페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캠페인의 맨 처음은 초라했다. 90년대 초입에 ‘도덕성 회복을 위한 캠페인’이란 타이틀로 기획된 단발성 아이템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깔고 성우나 아나운서가 사회 계도성 멘트를 읽는 방식이었다. 첫 연출을 맡았던 주승규(현 라디오 제작 2부장)PD가 ‘잠깐만’에 날개를 달았다. 누구라도 쉽게 흥얼댈 수 있는 ‘캠페인송’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단발성 기획물에 제작비가 넉넉할리 없었다. 주 PD는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빛과 소금’의 장기호(현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사진)씨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란 가사는 주 PD가 직접 썼다.

제작비도 없는 판에 노래는 누가 불렀을까. 마침 작곡가 장씨의 여자 친구가 중앙대 성악과에 재학 중이었다. 게다가 그 여자 친구에겐 성악을 전공하는 쌍둥이 동생도 있었으니. 결국 훗날 장씨의 부인과 처제가 된 두 여자 성악가가 노래를 맡았다. 19년째 청취자의 귀를 중독시킨 ‘잠깐만 송’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1년 ‘잠깐만 송’의 두 번째 버전이 나왔지만, 실제 방송에선 여전히 19년 전 노래와 번갈아 나오고 있다.

◆유명인과 일반인이 함께 출연=출연진의 변화도 시도했다. 성우나 아나운서의 다듬어진 목소리보단 친숙한 목소리를 택하기로 했다. 듣기만 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유명인의 목소리가 호소력이 더 짙을 거란 판단에서다. 저명 인사들이 메시지를 전하는 지금의 방송 형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55초 감동 라디오’의 탄생이다.

최근엔 일반인 목소리도 자주 들리는 편이다. 이달 초엔 계성여고 3학년 이다연양이 출연해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연극 활동을 하며 숨을 돌린다”는 내용의 방송을 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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