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 '할복정국']수습 나선 여당 "야당도 득 될것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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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윤홍준 수사→이대성 파일 유출→권영해 전안기부장 소환→權전부장 할복' 으로 숨가쁘게 이어진 '북풍정국' 이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23일 의원총회에서 김대중대통령까지 물고 늘어지는 등 초강경 발언 등으로 확전의지를 천명했다.

경제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춰 파문의 조기수습을 원하는 국민회의는 이에 대해 "국가원수에 대한 용공음해" "수구세력 결집의도" 로 맞받아쳤다.

여권은 금명간 검찰수사를 매듭짓는 등 사태의 조기수습을 시도하고 있으나 야당의 공세로 정치공방은 계속 될 듯하다.

그러나 막후에선 북풍정국이 확전될 경우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된다는 자성의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여권에 대해선 국가관리 방식이 서툴다는 비판과 함께 일부 관계자들의 무책임성이 지적되고 있다.

정보전문가들은 애초에 안기부 문제를 검찰에 맡기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신구 (新舊) 안기부 교체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당연히 전.현직 안기부장 사이의 '담판' 에 의해 신속히 해결했어야 할 사안이라는 것. 결과적으로 북한측에만 이로운 '북풍정국' 을 소리나지 않게 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국회 정보위원회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대성 파일' 공개여부는 국익차원에서 판단해야 하며 안기부가 자체결정토록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여권은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앞둔 23일 한나라당에 강력한 반격을 가했다.

'조용한 규명' 을 얘기한 주말까지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다.

국민회의 간부회의는 '경고' 라는 용어를 써가며 "사태의 초점을 흐리기 위한 정쟁화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는 입장을 정했다.

"북풍 덕을 본 쪽이 오히려 지나치게 정치적 소란을 피운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라" 는 촉구도 했다.

權전부장의 할복사건 이후 수위를 최대로 높인 한나라당 공세에 더는 밀리는 인상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도 작용한 듯하다.

여기에는 더이상 국민회의쪽이 의심받을 일도, 밀릴 이유도 없어졌다는 점도 한몫 하고 있다.

조세형 (趙世衡) 총재대행은 이와 관련, "북풍수사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 고 말했다.

수사기관에 의해 '이대성 문건' 의 작성경위.변조시기.유출과정 등에 대한 내막이 드러나고 있다는 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북풍은 이미 선거로 끝났다.

더 중요한 문제는 문건의 작성.배포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노린 효과" 라고 말했다.

그는 또 "權전부장이 자신의 신분보장, 그리고 자기 세력보호를 위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문건공작을 진행했다" 며 " (수사결과 발표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면 뭐가 나올 것" 이라고 자신했다.

정재문 (鄭在文) 한나라당의원의 베이징행적과 관련한 새로운 내용이 포착됐다는 전언도 있었다.

"그가 북한의 대남공작 총책 안병수 조평통위원장대행과 중요한 이야기를 교환했던 것으로 보인다" 는 설명이다.

중요한 얘기란 '준 (準) 전시상황 조성' 운운한 부분을 가리키는 듯한데 두 사람을 연결했던 재미 사업가 김양일씨를 통한 모종의 사실확인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반면 문건에 거론된 국민회의측 의원들은 수사기관의 조사에 응해 사실상의 면죄부를 받은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에 '불필요한 정쟁 중지' 라는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정치권이 민생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한나라당측이 책임져야 할 상황으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도 가진 것 같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경우 나중에 수사과정에 대한 일반의 의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여권이 이렇듯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본심이 확전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다.

최종적으론 여권이 손해보기 때문이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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