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산책] 蓋棺論定

중앙일보

입력

'개관논정'(蓋棺論定).
죽고 난 뒤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린다는 뜻이다.

1953년 가오강(高崗)은 마오쩌둥의 후계자가 되고자 했다.
중국 동북지방을 독립왕국처럼 주무르며
선양에 마오쩌둥 사진보다 스탈린 사진을 더 많이 붙여 놓았던
가오강은 자신이 정권을 잡을 경우
동지들에게 돌아갈 '자리'까지 다 점지해 두었다.

그러나 결과는 숙청 당하는 신세로의 전락이었다.
'반당 음모' 혐의가 씌워지자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이듬해인 1954년 수감 상태에서 음독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마오의 권력을 공고하게 했을 뿐,
중국 내부에 이렇다할 동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가오강에 대한 중국 사회의 평가가 싸늘했기 때문이다.

1976년 1월.
인민의 총리로 불리던 저우언라이가 숨졌다.
저우의 유체에 작별 인사를 하러 간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은 모자를 벗지 않았고 이 모습이 TV 전파를 탔다.

"저 여자를 때려줘야 한다."
격분한 중국 군중들의 외침엔 저우에 대한 중국인들의 평가가 담겼다.
결국 마오쩌둥 사후 이어진 '4인방 체포'는 당연한 것이었다.

1989년 4월.
중국 정치개혁의 선봉인 후야오방이 사망했다.
천안문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엔 후야오방의 대형 사진이 걸리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조화들이 바쳐졌다.

학생들은 '언론자유' '출판자유' '민주선거' 등을 외치고,
시민들은 부패 척결을 부르짖다 마침내 '피의 6.4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후야오방 사망 20주년인 올해 그에 대한 재평가 요구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침 허공에 몸을 맡겼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과연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주목되는 건 바로 이 반응이다.
민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심이기도 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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