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스티븐 핀커 '언어본능'…유전적으로 결정된 언어능력 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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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MIT공대 인지과학연구소 교수로 있는 스티븐 핀커는 뛰어난 과학자로, 또 글을 매우 잘 쓰는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그의 '언어본능' 도 생생한 묘사와 속도감 있는 문체가 돋보인다 (전2권.그린비刊) .그리고 새로운 이론과 제안으로 가득하다.

서문에 나와있듯 언어의 구조, 두뇌기능, 언어습득, 인류의 기원 등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참신한 의견이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그는 언어습득에 대한 전통적 사고에 일침을 가한다.

우리는 아기의 언어발달이 부모나 주위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해 왔다.

여성잡지나 신문 등에서 아동과 대화할 때 어른들이 지켜야 할 언어행위 등을 주요 주제로 종종 다루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분명한 발음과 간단하고 명확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아동의 몸뒤집기나 웃기, 그리고 걸음마에 대한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의문을 거의 품지 않는다는 사실. 이 점에서 '언어본능' 은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다.

왜냐하면 저자는 인간의 언어발달을 걷기, 웃기 등과 같은 본능적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때가 되면 웃고, 걷기 시작하고, 키가 크듯이 언어발달도 선험적으로 결정된 유전과 본능적 요건에 의해 진행된다는 주장이다.

거미의 직조술이나 박쥐의 음향탐지 능력과 같이 언어도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 인간의 두뇌 속에 각인됐다는 것. 저자는 나아가 언어가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 준다는 통념에도 반박한다.

인간의 언어 또한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인간의 언어, 감성, 인지, 두뇌 등의 발달에 관심을 가진 언어학자.심리학자.신경과학자들에게도 새로운 안목을 제시한다.

핀커의 이론에 의하면, 언어발달은 기억.감각기관.감정 등의 일반 인지영역의 발달과 독립적으로 이해돼야 한다.

즉 언어발달은 문법유전자 (grammar gene) 와 같은 언어 고유의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문법유전자가 존재하는 12살 이전에는 체계적 교육이나 훈련이 없어도 어떤 언어든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다양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저자로서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독자들의 교육적 배경에 따라 예제가 부족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설명이 불명확하거나 지나치게 장황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평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언어습득이나 두뇌기능에 대한 실증자료가 좀 더 보충됐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이 위에서 언급한 여러 독특한 주장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조숙환〈서강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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