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석연찮은 건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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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12일 건설교통부의 대응은 기민했다.

최재덕 차관은 소원 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관련 서류를 접수한 오전 10시30분에 맞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헌재의 사법적 판단과 관련된 현직 차관의 회견 자체가 이례적인 데다 발언의 강도도 만만치 않았다.

'청구 요건도 못 갖춘 소원' '심사할 필요도 없이 각하돼야' '범정부적으로 강력하게 대응'등 거친 표현이 동원됐다. 기자회견과 별도로 건교부는 '정부, 헌법소원을 강하게 반박'이란 제목의 21쪽짜리 장문의 반박 자료까지 냈다.

1주일쯤 지나면 헌법재판소가 당연히 의견 조회를 할 텐데 정부가 먼저 나서서 입장을 밝힌 것도 의외다. 건교부 관계자는 "반박을 하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낸 쪽의 의견만 언론에 보도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 대응했다"고 말했다.

사실 정부는 헌법소원 문제가 불거진 이후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건교부와 법무부의 고위 공무원으로 구성된 '헌법소원 대책반'이 지난달 초 구성돼 반대 논거를 준비했다.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정부가 반대 세력에 대한 반박 준비는 오래 전부터 해온 것이다.

헌법소원에 대한 반박에 건교부가 총대를 멘 것도 석연치 않다. 그동안 새 수도 후보지 선정을 비롯해 수도 이전과 관련된 중요한 발표는 모두 대통령 직속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가 도맡아 왔다. 건교부 측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특별법이 건교부 소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별법을 실제로 만든 것은 추진위원회 산하인 추진단이었다.

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정치 쟁점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 마당에 일부 시민의 헌법소원에 대해 행정부가 시민단체처럼 '반박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날 대전에서는 추진위원회 주최로 지방 순회 공청회가 처음 열렸다.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반박에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얼마나 공감했을지 궁금하다.

김영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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