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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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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1992년 시아버지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재선 운동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해 내내 남편은 신문을 보며 우울해 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할 능력이 없어 괴롭다'며 눈물도 자주 흘렸다. "(크리스토퍼 앤더슨 저 '조지와 로라')

아들 부시는 아버지의 선거유세 동안 언론과 자주 충돌했다. 휴스턴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CBS 앵커와 시끄럽게 다퉜고, 어떤 생방송 인터뷰에선 마이크를 집어던지며 자리를 떴다. '나쁜 언론'과 아버지의 접근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부시의 언론관계는 자신의 대선 유세 때도 나빴다. 99년 11월 보스턴TV 기자가 파키스탄 대통령의 이름을 묻자 더듬거렸다. 인도 총리 이름도 그랬고, 체첸 대통령 이름도 쩔쩔맸다. '무식한 부시'는 유세기간 내내 방송을 타며 괴롭힘을 당했다. 실제론 멕시코.중국.중동을 두루 다녔는데도 언론은 부시를 '외국 물을 못 먹은 촌놈'으로 낙인찍었다.

당선 뒤에도 시시콜콜 비판받다 이라크 전쟁에 이르러선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승승장구하던 전쟁 초기에도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은 "부시가 이라크를 오판해 바그다드 진격이 늦어졌다"고 때렸다. 워싱턴 포스트도 "전쟁을 너무 낙관했다"고 했다. 이라크에서 시달리는 지금 비판 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다.

'악의 축'이란 용어를 만든 백악관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 데이비드 프럼은 자신의 책 '옳은 사람(right man)'에서 부시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놨다.

"내 정책이 싫은 사람이 있다. 괜찮다. 모두를 늘 기쁘게 해줄 순 없다. 옳다고 믿는 걸 할 뿐이다. 그게 싫다면 국민은 나를 다음 선거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 이전과 관련된 일부 언론의 비판을 '거대 건물을 가진 기득권 언론의 정권 흔들기'라고 화를 냈고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논리라면 부시 대통령도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 같은 언론의 뭇매에 대해 '방송.출판업.케이블 TV를 끼고, 큰 건물에 앉아 있는 기득권 세력의 정권 흔들기'라고 성질냈을 법한데 그런 말이 안 들린다는 건 흥미롭다. 적어도 그 점에선 58세 동갑인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비교된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