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북풍 수사 남북관계 '뜨거운 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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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안기부 북풍공작 수사의 불길이 강풍을 타고 휴전선까지 넘나들고 있다.

안기부 등 사정당국이 확보한 문건에는 대선기간중 안기부측 요원들과 북측 공작원들 사이에 극비리에 이뤄진 '거래' 명세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안기부 내부의 반대자가 작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등 여권핵심부는 "언론에 공개된 이상 사실여부는 가려야 할 것" 이라며 대선기간중 오고 간 양측 커넥션간 거래내용 수사의 불가피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겨울 김대중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기부 관계자들이 북측과 은밀히 만나 '모의' 했다면 모른체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사정당국은 그동안 조사를 통해 북측의 고위책임자가 지난해 여름부터 베이징 (北京)에 상주, 대선관련 공작을 총 지휘했고 안기부 요원들이 실무선에서 북측과 접촉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물증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익제 (吳益濟) 의 편지.TV출연.각종 편지공개건 등은 누가 보더라도 북측의 의도성이 분명하며 이 과정에서 안기부측도 직.간접적으로 끼어들었다는 판단이다.

북한의 의도를 말하는 것은 오익제의 TV출연 등이 김정일 (金正日) 의 재가없이 이뤄질리 없을 것이며, 안기부가 그런 대북공작을 성사시킬 수까지는 없으리라는 점에서다.

안기부 일각에서 "북측은 특별팀까지 가동, '金후보 낙선' 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달려들었지만 남쪽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이에 편승했다" 는 자성론이 제기됐던 것도 이런 측면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단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상 "대선이라는 특수시점에 누가 어떤 경위로 어떤 거래를 했느냐" 는 사실규명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또 이를 따지다 보면 이를 지시 또는 묵인한 안기부 윗선이 누구냐는 문제로 귀착될 것임도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문제는 핵폭탄과도 같은 남북한 커넥션이라는 민감한 사안이 본격적인 수사대상에 오를 경우 그 파장과 후유증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이다.

여권은 "정상적인 커넥션까지 조사하는 것은 아니며 대선 때 북풍공작에 개입한 대북 (對北) 커넥션으로 국한될 것" 이라는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의사소통을 위한 커넥션의 필요성은 남북한 모두 인정하고 있고 커넥션은 일단 공개되면 더이상 가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칫 잘못해 극비에 부쳐져야 할 커넥션들이 줄줄이 드러나면 신정부의 대북활동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됨은 물론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여권핵심부가 이번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고심중이며 철저히 '입조심' 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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