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관여 논란으로 본 ‘사법행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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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계기로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근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조직법에는 각급 법원장의 권한과 관련해 ‘사법행정 사무를 관장하며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포괄적이어서 실제 법원장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대법원 예규나 각급 법원의 내규에도 법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나와 있지 않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8일 신 대법관에 대해 주의·경고 조치를 권고하면서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장의 업무는 대법원장의 업무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9조에 따라 유추 해석하거나 관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원조직법 9조는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사무의 일부를 각급 법원의 장에게 위임할 수 있고, 법원의 조직·인사·운영·재판 절차, 기타 법원 업무에 관련된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이 필요할 경우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통상 법원장의 ‘사법행정 사무’는 행정업무와 재판사무로 나뉜다. 행정업무에는 예산업무와 시설관리 등이 있으며 이 같은 업무는 판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이 근무하는 사무국에서 맡는다. 재판사무에는 장기 미제사건 처리 독려, 조정·화해 비율 제고 등이 있다. 공판중심주의, 구술심리와 같은 법원 수뇌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재판 방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행정업무를 다루는 사무국은 일반 공무원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판사들을 상대하는 재판사무의 경우에는 ‘지휘·감독한다’는 법원조직법 조항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헌법 103조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장은 ‘장기 미제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라’ ‘조정률을 높이라’고 독려할 뿐 일선 판사들이 이를 따르지 않아도 강제할 권한은 없다. 다만 법원장은 근무평정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방침을 이행하지 않는 판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

대법원은 최근 사법행정권의 범위를 설정하고 재판의 독립을 침해당했을 때 이를 논의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팀을 출범시켰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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