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식량 국제지원 파격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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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식량을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함으로써 지난해 8월 장승길 (長承吉)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의 미국 망명 이후 중단됐던 북.미 미사일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지난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김계관 (金桂寬) 대표는 이미 미사일협상 재개에 원칙적인 동의의사를 표명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합의는 단지 협상을 재개한다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만일 협상이 재개돼 북한이 미사일 수출을 중단키로 결정한다면 북.미관계는 빠르게 개선될 것이며 이에 따라 남북한 관계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에 미국이 제시한 국제컨소시엄을 통한 대북 식량지원 구상은 신정부가 검토중인 북한과 직접 대화 추진 구상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가장 아쉬운 식량을 국제기구를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 남북한 직접 대화에 나설 이유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세차례 열린 미사일협상에서 미사일 개발은 독자적인 주권행사이므로 미국이 간섭해선 안될 문제이나 수출중단 문제는 적절한 '보상' 이 따른다면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보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입장을 바꿔 보상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 동결을 대가로 각종 경제제재도 해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져 미사일협상이 급진전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핵협상을 통해 경수로와 에너지의 안정적 보급이라는 '생명줄' 을 확보한 북한은 마찬가지로 미사일 협상을 경제회생에 필수적인 각종 경제적 지원과 혜택을 얻어내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도 북한의 이같은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4자회담은 의제를 '평화체제 구축' 과 '긴장완화.신뢰구축' 등으로 하자는 한.미 양국과 주한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반드시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 있어 앞날이 밝지 않다.

강영진 기자, 제네바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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