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마음 상하게 한 말 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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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자인은 사이즈가 없으신데요." "이 TV는 화질도 좋으시고, 녹화기능도 있으세요."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런 엉터리 존댓말을 낳았을까. 현대백화점이 직원들이 흔히 잘못 쓰는 표현을 점검한 결과 어법에 맞지 않는 사례가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백화점은 최근 사내 인터넷 설문을 통해 직원들이 고객을 응대할 때 오해를 사거나 불만을 낳게 하는 사례를 물었다. '고객 마음을 상하게 한 나의 한 마디는'이란 질문에 모두 350명이 답했다. 백화점은 사례들을 여섯 가지 유형의 '엉터리 응대법'으로 분류했다.

◇도대체 누구를 높이는 건지...

백화점 직원들은 고객이 아닌 상품을 존대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스카프는 실크로 돼 있으세요" "고객님 가방이 참 럭셔리 하시네요" "이 상품은 더 이상 입고가 안 되세요" "수선 맡긴 옷이 나오셨네요" 등이 대표적인 실수담이다. 고객을 높이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물건을 높인 꼴. 이정득 고객서비스팀장은 "고객들은 어색해 하면서도 공손한 표현을 하려다 실수한 것이라고 이해해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고객은 세련되지 못한 서비스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고.

◇거기~ 아모레!

직원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 대신 '거기 시슬리~ 이리 좀 와보세요.' '어이~ 갭!' 처럼 브랜드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백화점의 특수한 근무 환경 때문이다. 수백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판매사원들은 각 브랜드 본사에서 파견 나오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일하더라도 서로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편의상 소속 브랜드로 호칭하게 된다.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으나, 고객들은 듣기 거북하다는 지적이다.

◇'언니~' '어머님~'

고객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어머님, 이건 어떠세요" "아버님, 참 잘 어울리세요" 같은 호칭을 사용하다 고객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몇 해전만 해도 관행적으로 쓰던 표현이었으나 최근에는 고객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 편이다. 여성 고객에게 사용하는 '언니'라는 호칭은 친근감보다는 반말에 가깝다고 느끼는 고객이 많다.

◇직원끼리 반말은 고객도 싫어

손님 앞에서 직원끼리 반말을 하거나 선배가 후배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것도 고객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 막내야~ OO 가져와" "얘, 이것 좀 치워" 같은 표현들이다. 손님에게 친절하게 말을 끝내자마자 직원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게 고객에 대한 태도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것.

◇그들만의 용어 남발

백화점 직원들끼리 업무때 쓰는 용어를 고객에게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행사 상품은 중앙 포스로 가셔서 결제하셔야 해요", "씨에스에 더 신경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가 한 예다. 포스(POS)는 계산대, 씨에스(CS)는 고객만족을 뜻한다.

◇지나친 유행어 사용

"이거 신상이에요" "가격이 참 착하게 나왔어요" 같이 유행어나 은어를 섞어 쓰는 경우 고객이 불쾌하게 느끼기도 한다. 신상은 신상품을, '가격이 착하다'는 '가격이 싸다'는 뜻이다. 제품 설명에 대한 진정성이나 고객에 대한 배려가 없고, 가벼운 표현으로 판매에만 급급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지적이다.

이정득 팀장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잘못된 용어 사용 같은 사소한 실수로 고객이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불만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직원 교육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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