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안기부]직원구속… 인사태풍 예고…한숨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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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내곡동 안기부 청사에는 침통함이 깔려 있다.

스산하다.

여야 정권교체로 가뜩이나 인사태풍이 예고되던 터에 북풍 (北風) 사건 회오리까지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소속 직원이 현직 신분으로 검찰에 구속되는 전례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리혐의 직원은 자체 감찰을 거쳐 옷을 벗긴 뒤 '전직 (前職)' 으로 검찰에 넘기는게 통례였다.

특히 사건에 직접 연루돼 실장부터 하급직원까지 구속되거나 조사받는 해외조사실은 초상집 신세다.

국내팀의 한 직원은 "구조조정까지 겹쳐 가위 혁명적 상황" 이라고 전했다.

퇴근후 인근 양재역 일대의 술집에는 삼삼오오 모여 앞날을 걱정하는 안기부 직원들이 늘었다고 한다.

과거 같으면 신분노출을 꺼려 조심스레 술잔을 기울였지만 이젠 수사상황에 대한 불만이나 간부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정보전쟁에서 패배하면 퇴장하는 것이 정보사회의 불문율이고 생리인데 선배들이 그렇지 못해 실망스럽다" 는 얘기도 나온다.

책임회피에 급급한 몇몇 간부들도 입에 오르내린다.

부하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속에는 '복종' 을 생명으로 알았는데 이젠 업무지시를 받을 때 신변보장 각서를 요구해야 겠다는 자조 (自嘲) 도 섞여있다.

그러나 이런 홍역을 겪어서라도 안기부가 재출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라고 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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