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미국 없이 홀로 서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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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은 이제 우리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것이 촛불시위의 성과이건 아니면 미국의 새로운 세계 전략의 실천이건, 아무튼 미국은 지금 보따리를 하나 둘 싸고 있다. 어디로? 그것도 불투명하다. 서울 용산 주민들은 치솟을 땅값 때문에 조용한 기쁨을 맛보겠지만 미군이 이사 갈 예정지의 주민들은 똑같은 이유로 그것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미국이 언제부터 그렇게도 혐오스러운 존재가 돼 버렸나?

우리 국민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미관계는 언제나 끈끈하게 유지돼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 안목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냉철히 돌아보면 미국이 우리나라와 돈독한 우방 관계를 맺은 지난 반세기는 한.미관계에서 예외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 이전에 두 나라 사이에 맴돌던 기본 톤은 무관심과 냉담, 그 자체였다.

서구 열강이 동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던 때부터 조선은 그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들은 조선을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선박의 길목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1861년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서 소각되었어도 미국은 5년 후에야 군함 5척을 보내 책임을 물을 정도였다. 물론 그때는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바빠서였다고 치자.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신미양요가 미국의 패배로 끝나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에 더 이상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열강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말에 무수한 국적의 서양 함대가 우리의 근해에 홀연히 나타나 수심을 재보고는 돌아갔다. 그것은 한반도를 그들의 해군기지나 선박 항해를 위한 석탄저장소로 쓸 수 있는가를 은근슬쩍 조사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훌륭한 포구들은 다도해 속에 꼭꼭 숨어있어서 한반도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미국의 우리에 대한 관심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 일본에 대한 처리문제의 부수사항으로 생겨났다. 그래도 그 정도는 미미해서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는 제외됐었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키면 6일 만에 한반도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고 오산했다. 그러나 미국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자 미국 의회는 만장일치로 그것을 저지하려고 결의했다. 그후 한.미관계는 전쟁을 같이 치른 혈맹으로 바뀌었다.

이제 냉전은 끝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목할 만한 국가 경쟁력의 변화를 살펴보면 1960년대에 독일과 일본이 패전을 딛고 경제 강국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들 수 있다. 양국에서는 전후 처참한 가난 속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에는 한국전 특수를 마련해 주었고 독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특수를 가져다 주면서 그들의 경제를 북돋웠다. 그러자 10년 만에 이 둘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편으로 갈라섰었다. 누군가가 잘 뻗어나가려면 줄서기를 잘해야 된다는데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우리는 미국편의 줄을 서서 50년 만에 국민소득이 40달러에서 1만달러 이상으로 치솟는 기틀을 마련했다. 대체로 미국에 줄을 선 나라들은 소련에 줄서기를 했던 나라들보다 현재 잘 먹고 잘 살고 잘 다스려진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이 우리에게 아주 큰 과오를 저지른 양 질타한다. 그러나 그 비난은 수천 년 동안 쌓였던 중국에 대한 사대와 일본 식민통치에 짓밟혔던 민족혼의 한풀이를 미국에 몽땅 쏟아붓는 것 같다. 이제 반세기 동안 보호막이던 인큐베이터는 사라지고 우리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감성에 기초한 외교는 금물이다. 그리고 국내정치의 패권다툼에 외교를 제물로 삼아서도 안 된다.

김형인 한국외대 교수.미국사

◇약력 : 고려대 졸, 미 뉴멕시코대 박사, 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대우교수, 저서 '미국의 정체성', 역서 '한국전쟁의 국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