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약정서에 서명” “약정서대로 기부금 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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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조 회장(오른쪽)과 진애언 여사. 송봉근 기자

송금조 (주)태양 회장과 부산대 간 분쟁의 가장 큰 쟁점은 기부금을 목적대로 썼는지다. 송 회장 측은 기부금 용도가 ‘양산 제2캠퍼스 부지 대금’이었다고 주장한다. 부산대 측은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이었다는 입장이다. 부산대 측 주장이 맞다면 대학 측이 양산 제2캠퍼스 부지 대금 외에 쓴 돈들도 정당화된다.

송 회장 부부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기부금 약정서’에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용도가 나타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송 회장 측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양측의 주장을 요약했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까.

“305억원이란 구체적 숫자가 근거”
“2002년 회장님 건강이 악화돼 2003년 10월 13일 김인세 총장이 집으로 찾아와 ‘기부금 약정서’를 교환했다. 김 총장은 우리 부부에 대한 부산대의 ‘예우서(禮遇書)’를 보여 주면서 ‘송 회장님 아들로서 아버님처럼 모시겠습니다. 송 회장 내외분 맏상제를 내가 하고 부산대 교수님들은 전부 상주가 될 것입니다’고 했다.(※실제로 부산대의 ‘예우서’에는 ‘회장님 내외분 장례 부산대학교 주관’이란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학총장이 아들이 되겠다고까지 하고, 장례식을 해 준다는 것은 자식이 없는 회장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기부금 약정서에 서명하려 했다. 김 총장이 직접 작성해 온 기부 약정서를 꺼내면서 서명을 부탁하는데 기부금의 용도가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돼 있었다. 내가 ‘양산캠퍼스 부지 대금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자 김 총장은 ‘그건 언제든지 바로 하면 되고 시급한 일들을 먼저 추진해야 된다’며 계속 서명을 요구했다. 당시 양측의 분위기가 좋아 총장을 믿고 서명한 것이다.

더욱이 약정서를 작성하기 닷새 전인 10월 8일에도 김 총장은 ‘기부 약정서’를 들고 우리 부부를 찾아왔다. 그때 약정서엔 분명히 기부금 용도가 부산대 제2캠퍼스 부지 대금 잔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닷새 만에 김 총장이 ‘이전 약정서는 학교 로고가 없어 무효’라며 기부 용도를 바꿔치기한 서류를 들이밀었다. 우리 부부는 김 총장의 태도가 미덥지 않아 2004년 2월부터 김 총장에게 서신을 보내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했다. 한참 뒤에야 요구한 것이 아니다. 2007년 5월 18일 부산대발전기금이사회는 ‘송 회장 부부의 기부금은 양산캠퍼스 부지 대금임을 확인한다’고 했고, 의결서엔 ‘기지급된 기부금이 당초 용도와 다르게 사용된 데 대해 도의적으로 적절치 못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까지 있다. 그런데 김 총장은 ‘곧 바로잡아 주겠다’는 약정서를 차일피일 끌다 4년 뒤에야 바로잡아 줬다.

‘305억원’이란 액수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 2002년 부산대가 한국토지공사(토공)와 체결한 양산캠퍼스 부지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공사 대금이 510억원짜리였다.

이 중 130억원은 부산대와 토공의 토지 맞교환으로 해결됐고, 계약보증금 38억원은 학교 측이 부담했으며, 37억원은 부산대 병원이 맡았다. 부족한 잔액(510억-130억-38억-37억원)이 바로 305억원이었으며 그걸 회장님이 채워 주기로 한 것이다. 만약 양산 제2캠퍼스 건립 목적이 아니었다면 305억원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나.
기부금 내역을 밝혀 달라고 했더니 대학 학장들이 서명까지 해서 우리 부부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다. 세상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순수한 마음 하나로 거액을 투척한 기부자가 그런 최소한의 요구도 할 수 없나.

양산캠퍼스 부지 대금으로 지출은 하지 않고, 김 총장은 장학금도 아니라 교수들에게 전임 총장보다 몇 배씩 연구비를 더 줬다고 자랑한다. 총장 연임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이번 일은 김 총장의 거짓말 한마디를 끝까지 바꾸지 못해 일어난 거다.”

“총장 반대세력과 접촉한 의혹”
“송 회장 내외가 어떤 분들인데 본인들이 동의하지 않은 내용에 친필 날인을 했겠는가. 만약 기부 목적이 본인들 생각과 달랐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김 총장에게 얘기했을 것이고 김 총장이 수정해 드렸을 것이다. 3만5000원짜리 약정서도 아니고 305억원짜리 약정서 아닌가. 연필로 고쳐야 할 곳에 줄만 그어도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김 총장이 맨 처음 제시했다는 10월 8일의 약정서 문건은 존재 자체를 모르겠다. 오직 10월 13일 작성한 문서만이 진본이며, 8일 작성됐다는 문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송 회장 측이 처음엔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으로 쓰는 데 동의하다가 3년도 더 지나 약정을 바로잡아 달라고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2007년 총장선거 때 김 총장을 음해하던 반대편 인사들이 진애언 여사와 접촉한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대학은 기부자의 뜻을 존중해 2007년 10월 이후 송 회장의 출연금에 해당하는 195억원을 제2캠퍼스 부지 대금으로 지급 완료했다. 우리는 지금 할 말이 많지만 안 하고 있다. 친필 날인한 약정서만이 진본이다.”

초등교만도 못한 대학 기부금 공개
송 회장 측과 부산대 측의 날 선 공방은 결국 법정에서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기부금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게 국립대의 기부금 오용 실태는 국민권익위원회(옛 고충처리위원회)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주요 국공립대 6곳을 대상으로 기부금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부당 집행 사례가 ‘다양하게’ 적발됐다. 교수의 연구 과제 수행비가 이미 책정돼 있는데도 기부금에서 이중으로 지급하거나 교직원 해외 연수 비용·인건비 등으로 기부금을 썼다. 조사 대상 6개 대학 중 3곳은 매달 총장에게 기부금에서 200만~500만원씩을 ‘대내외 협력’ ‘홍보활동 강화’ 명목으로 떼 줬다. 무엇보다 집행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권익위는 지적한다. 현재 초·중·고교 발전기금(기부금)은 관계 법령에 따라 사용 명세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대학 기부금은 아직 집행 내용 공개에 관한 규정조차 없다. 초등학교만도 못한 게 대학 기부금 법령이다.

부산=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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