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절대빈곤과 상대적 가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식량의 절대 부족으로 끼니 걱정을 하는 상태가 '절대 빈곤' 인데, 국제 식량지원이나 구호물자를 요청하는 아프리카 등지의 일부 나라들이 여기에 처해 있는 반면 '국제 구제금융 지배' 아래 있는 우리는 지금 그래도 좀 나은 '상대 빈곤' 의 상태에 있다.

그러나 상대 빈곤이라 해도 부채가 많고, 일부 국민이 아직도 근면과 검소를 외면한 채 자신의 능력과 처지에 과분한 것을 계속 추구한다면 절대빈곤 상태보다 못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절대빈곤 상태의 국가들에 대한 국제 식량 지원이나 상대빈곤 상태에서 외환고갈로 경제파국의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국제 구제금융으로 난국을 벗어나기는 사실상 어려우며 오히려 각국 국민 스스로의 땀과 눈물로만 빈곤해방이 근본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세계의 식량 대란 태풍이 수년내에 우리에게도 예외없이 닥칠 것으로 보면 한시바삐 우리도 남북한 모두가 감자나 고구마같은 작물의 대량 재배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다.

상대적인 가난이란 '가난' 자체 때문보다 '상대' 때문에 실제 이상으로 느껴지는 가난이니, 나보다 나은 사람의 생활이나 자신의 과거 생활 수준과 비교해 현재 생활을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 상대적인 가난은 '가난' 자체나 '상대' 때문이라기보다 과욕 (過慾) 때문에, 실제로 있는 가난 이상의 '없는 가난' 까지 스스로 만들고 꾸며서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잘 살아보려는 '의욕' 은 옳고 좋은 것이며, 발전과 성공을 위해 있어야 할 원동력이다.

그러나 타고난 능력이나 자질, 또 이미 가지고 있거나 합당하게 주어지는 대가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며, 자신이 아닌 남을, 또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하는 과욕은 아무리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더욱 불만족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개인이나 단체나 국민도 실제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아 (自我) 인식이나 자기 소유의 확인 위에서 생존해야 한다.

자신이 아닌 것을, 자신에게 없는 것을, 또 자신에게 안될 것을 추구하며 시도하는 자세는 불만과 실패의 기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가 궤도 (軌道) 를 이탈했고, 특히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일부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산업 동맥경화 증세조차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환자 같았다.

즉 경제 파탄은 잘못된 우리 사회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주로 정치지도자들과 대기업가들, 또 금융인들의 과욕과 과실에 의해서지만 많은 국민들도 저들과 함께 공범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특히 무능한 사람들을 지도자로 추대하며 추종한 이들과 다수 국민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선전한 홍보매체 요원들도 반성해야 한다.

사람은 과욕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능력과 의욕으로 생활해야 한다.

집도, 직업도, 자녀교육도, 지위도, 결혼도, 친구도, 학업도, 사업도, 모든 것에 있어 우리는 이제부터 과욕을 버린 자세로 자신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신의 정도' 대로 하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가 당하는 가난 속에서 우리 자신과 가난의 현실만을 의식할 뿐 상대를 향한 시선이 줄게 되므로 결국 상대적인 가난은 덜 느끼게 마련이다.

물 속에 사는 우렁이나 소라는 제 몸에 맞는 크기의 껍데기를 제 집으로 삼아 만족해 하고 그 속에서 살며, 누에도 제게 맞는 고치를 만들고 들어가 안식할 줄 안다.

사람들은 큰 집을 탐하지만 집이 너무 크면 집이 아니고 짐이 되며, 무덤도 너무 크면 언덕이 될 뿐이다.

감투도 머리 크기에 맞아야지 너무 크면 눈과 귀와 입까지도 감투 속에 가려버린다.

존재 (存在) 와 소유 (所有) 와 향유 (享有) 의 관계에 있어 우리는 우리 존재가 수용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소유도, 또 소유하고 있는 그 이상의 향유도 불가 (不可) 함을 깨닫자. 행복이란 인간의 욕구가 원만히 충족되는 지속적인 상태며, 이러한 행복은 많이 가진 자들보다도 물욕이 적은 이들이 훨씬 더 많이 누리고 있다.

변기영〈천진암성지 주임신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