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2006년 발행한 기념주화. 첫 여성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가 주인공 이다.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제공]
가족이 화폐에 등장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도 흔치 않다. 독일 화폐에는 동화 작가 그림 형제, 프랑스에서는 과학자 퀴리 부부, 필리핀 돈에는 정치가 아키노 부부가 모델로 등장한다.
한 가지 돈에 함께 그려진 그림 형제나 퀴리 부부와 달리 아키노 부부는 각각 다른 화폐 주인공이 됐다.
먼저 등장한 이는 남편인 베닝요 아키노(Beningo Aquino Jr.·1932∼83) 전 상원의원. 1987년 발행된 500페소 지폐에 나온다.
1950년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해 기사를 쓰고 있는 젊은 날 모습이 뒷면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는 혼란에 빠져드는 조국의 정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마닐라 공항에서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됐다. 그의 죽음은 마르코스의 장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민주화 투쟁의 신호탄이 된 동시에 평범한 주부였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76)를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이끌어 필리핀 현대사에 새 장을 열었다.
코라손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이 가져온 부정부패 척결에 역점을 뒀고, 여성 각료를 발탁해 여성의 사회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2006년 발행된 1만 페소 기념주화에서 만날 수 있다.
백남주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