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돋보기 ⑨ 아키노 지폐·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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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필리핀에서 2006년 발행한 기념주화. 첫 여성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가 주인공 이다.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제공]

 새로 나오는 5만원권 지폐 도안에 신사임당이 선정되면서 우리 화폐 처음으로 어머니와 아들(율곡 이이)이 모두 화폐에 나오게 됐다.

가족이 화폐에 등장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도 흔치 않다. 독일 화폐에는 동화 작가 그림 형제, 프랑스에서는 과학자 퀴리 부부, 필리핀 돈에는 정치가 아키노 부부가 모델로 등장한다.

한 가지 돈에 함께 그려진 그림 형제나 퀴리 부부와 달리 아키노 부부는 각각 다른 화폐 주인공이 됐다.

먼저 등장한 이는 남편인 베닝요 아키노(Beningo Aquino Jr.·1932∼83) 전 상원의원. 1987년 발행된 500페소 지폐에 나온다.

1950년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해 기사를 쓰고 있는 젊은 날 모습이 뒷면에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는 혼란에 빠져드는 조국의 정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마닐라 공항에서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됐다. 그의 죽음은 마르코스의 장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민주화 투쟁의 신호탄이 된 동시에 평범한 주부였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76)를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이끌어 필리핀 현대사에 새 장을 열었다.

코라손 전 대통령은 장기집권이 가져온 부정부패 척결에 역점을 뒀고, 여성 각료를 발탁해 여성의 사회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2006년 발행된 1만 페소 기념주화에서 만날 수 있다.

백남주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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