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타개의 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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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결승1국> ○·쿵제 7단 ●·이세돌 9단

제11보(80-87)=초반에 쾌속 전진하던 흑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백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고심하며 난국을 타개해 나가는 흑, 조금씩 고삐를 조여가며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백. 아마도 이 무렵 쿵제 7단은 승리의 예감에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흑A의 선수를 막기 위해서 80은 꼭 두어야 한다. 그 다음 82의 어깨 짚기가 박자가 척척 맞는 절호의 한 수다. ‘참고도1’ 흑1, 3으로 넘어가는 것은 백4의 씌움을 당해 나갈 길이 없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재주가 없는 한 좀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세돌 9단은 부득이 83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다시 84의 돌파를 당했다. 백△의 돌파보다는 충격은 덜하지만 흑의 보루라 할 좌변마저 뚫리자 검토실에선 “흑 집이 어디 있나” 하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우상 일대에 20집, 좌상 10집. 그게 전부라면 앞날이 어두워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이세돌 9단은 다시 85부터 움직여 타개에 나선다. 86은 쿵제다운 침착한 후퇴. ‘참고도2’ 백1로 막아버리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컸을까. 눈감고 막고 싶은 곳이다. 하나 막상 흑이 2, 4의 패로 버티고 나오면 팻감이 없는 백은 궁지에 몰릴 수 있다. 87까지 되고 보니 어느덧 흑은 안정권에 들어선다. 살리고 살리고 또 살리고… 과연 이세돌은 타개의 천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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