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사회심리학]4.더불어 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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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0여년 전쯤 국내 TV에 방영됐던 휴대용 카세트 광고의 한 대목. 비가 오는 한적한 전원의 통나무집에서 이어폰을 끼고 록음악을 듣고 있는 남자에게 여자친구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노크 소리가 들릴 리 없다.

한참 후 여자는 남자가 변심 (變心) 했다고 판단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발걸음을 돌린다.

이상한 느낌이 든 남자는 문을 열고 여자의 뒷모습을 향해 이름을 외친다.

하지만 이번엔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아 여자는 뒤돌아보지 않고 멀리 사라져 버린다.

그때 남자 주인공이 중얼거리는 말. '음악과 함께 라면 혼자라도 좋다.

' 우리 주변에 음악이 범람한다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음악 없는 삶이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의 동반자가 돼 버렸다.

등산을 할 때도 조깅을 할 때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 음악은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다정한 친구다.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카세트 플레이어는 거의 필수품. 음악을 들으면 고독감을 덜 느낀다.

주말 오후에 FM청취율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동반기능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음악이 수행하는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주변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시끄러울 때는 적당한 볼륨의 음악을 틀어놓으면 좋다.

주파수가 다른 소리끼리 만나면 어느 한쪽은 파묻히기 때문. 이 경우 음악보다는 소음 쪽이 파묻히기 쉬운 속성을 갖고 있다.

이를 차폐기능이라고 부른다.

음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절대적 적막감까지도 차단하고 은폐해 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지루한 일도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이같은 작업능률향상기능을 생산현장에 활용한 것이 '산업음악'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결근 일수도 줄어든다.

음악은 또 정신적.육체적 치료의 목적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영화의 키스신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 할리우드에서는 쭈뼛거리는 남녀 주인공을 위해 촬영현장에서 바이올린 선율을 생연주로 들려줬다는 일화에서도 음악의 분위기 창출기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이밖에 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연대감 형성기능도 있다.

그래서 국가 (國歌).교가.응원가는 혼자 불러서는 제맛이 나지 않는다.

시위현장의 노래는 시위대를 결속해주는 끈끈한 밧줄인 동시에 이탈자를 방지하고 외부의 지지와 동정심, 더 나아가 새로운 가담자를 불러모으는 유혹기능도 함께 갖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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