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소화불량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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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의학계에는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임자 원숭이' 라는 실험이 있다.

두 마리의 원숭이를 묶어 놓고 그 중 한 마리를 '책임자' 로 지정한 다음 불빛 등의 자극이 있을 때마다 손잡이를 누르도록 훈련시키는 실험이다.

만약 자극이 있는데도 손잡이를 누르지 않을 때는 두 마리 모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데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전기충격을 당한 원숭이는 잠깐 놀라기만 할 뿐 건강하게 살아남지만 자극에 대비해 늘 긴장해야 하는 책임자 원숭이는 열흘쯤 뒤에는 심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심리적 부담감이 인간의 건강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가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이다.

실제로 직장인들의 크고 작은 질병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나 울분 때문에 생긴 '생병' 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화를 내거나 고민을 많이 하면 위 (胃) 내벽의 위산에 대한 보호장치가 약화돼 궤양이 생기게 되며 그밖에도 혈압이 올라가거나 부정맥 또는 불면증 등의 증상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성인병의 70%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 보고서나 우리나라 40대 남자 사망률이 세계 1위라는 통계도 '책임자 원숭이' 실험을 그대로 입증한 결과로 보인다.

다소의 예외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절대다수는 크든 작든 저마다 '책임' 을 어깨에 걸머지고 살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과 관련한 스트레스만으로도 힘겨운데 거기에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까지 얹히니 사면초가일 수밖에. 특히 지난 1월 한달간 정리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지난해 평균 실업자의 8배나 되며 아직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청명 (淸明)에 죽으나 한식 (寒食)에 죽으나 (오늘 당하나 내일 당하나 별 차이가 없다는 속담)' 를 읊조려야 할 상황이니 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일는지 짐작이 갈 만하다.

그 까닭인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하에서 대부분의 업계가 불황에 허덕이고 소비가 급감하는 가운데 소화제와 위장약 판매가 회사마다 50% 안팎 급증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건강이 최고' 라지만 실천에 옮기기에는 너무나 짐이 무거운 우리 직장인들이 딱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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