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증시, 뒤집힌 好材와 惡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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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20일 서울여의도 증권사 객장. 주식시세 전광판에 사업양도 공시를 한 삼성중공업의 주가는 빨간불과 함께 단번에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중장비부문을 스웨덴 자동차회사인 볼보에 매각키로 했다는 소식이 확인되자 주가가 힘차게 뛰어오른 것이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인 지난해 같으면 '오죽했으면 대기업이 주력사업분야를 매각했겠느냐' 며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을 일이다.

7억달러의 매각대금이 들어올 경우 삼성중공업은 확실히 국제통화기금 (IMF) 파고를 견뎌낼 것이란 확신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3일째 상한가를 친 주가는 23일엔 올들어 가장 높은 8천50원에 마감됐다.

삼성중공업의 경우만이 아니라 과거에 악재였던 것이 호재로 바뀌는 일이 요즘 증시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IMF란 극한 상황이 닥치면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것은 증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최근 이처럼 호재와 악재의 기준이 뒤바뀐 다른 예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속출하고 있는 은행권의 '협조융자' .최근 수천억원씩의 협조융자를 받은 한화.고합.동아.쌍용.국제상사.진도.신원.신호.해태그룹 등은 모두 주가가 최소 폭락세를 면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안정을 되찾고 있다.

IMF체제 이전 같으면 극비에 부쳐졌을 협조융자가 최근에는 기업회생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져 해당 기업뿐 아니라 증시 전체에 호재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구조조정과 자구노력도 악재에서 호재로 말을 갈아탔다.

예전같으면 부실자산을 매각하고 적자사업부문을 폐쇄하고 싶어도 '심한 자금난에 빠져 위험하다' 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악재로 작용했다.

실제로 올들어 한화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 3~4개만 남기고 모두 매각하기로 하자 지난해 12월 1천원선이던 한화에너지의 주가가 최근 5천원에 육박하고 있다.

불과 한달여만에 3배 가까이 주가가 치솟은 셈이다.

침체장세에서 악재중의 악재로 꼽히던 유상증자도 이를 실시한 기업은 적어도 당분간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낳으면서 호재로 둔갑하고 있다.

이에 반해 과거에는 우량기업의 상징물로 여겨지던 지급보증이 이제는 연쇄부도의 도화선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주식투자자들의 '요주의' 대상 1번으로 떠올랐다.

대기업의 경우 차입규모도 과거에는 기업의 '능력' 으로 평가돼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이제는 '멍에' 로 여겨지면서 최대의 악재로 급전직하했다.

이와 함께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것도 과거에는 호재였으나 이제는 매물 홍수로 인해 내놔봤자 안팔리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투자자들에게 퍼지면서 매력을 잃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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