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농산물 유통구조가 농민과 소비자 모두를 우롱하고 있다.
기름값 인상 등으로 생산비는 치솟고 있지만 산지 가격은 오히려 폭락, 농민들의 마음이 멍들고 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고 개선방안은 없는지…. 본사 전국 취재반이 점검했다.
편집자
전남 담양군 무정면 영천리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김복남 (金福男.42) 씨는 지난 9일 오후 5㎏들이 53상자를 트럭에 실어 서울 가락동의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보냈다.
다음날 새벽 열린 경매에서 경락가 (競落價) 는 총 20만7천여원. 상자당 3천9백여원, ㎏당 7백80원 꼴이었다.
하지만 도매시장에서 수수료와 하역비.운송비를 빼고 통장으로 입금시켜준 금액은 총 17만4천여원. ㎏당 6백57원에 불과했다.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후 기름값 인상으로 비닐하우스 난방비 등 생산비가 30% 이상 늘었습니다.
㎏당 1천5백원 이상이어야 수지가 맞는데 절반도 안되니…. 또 헛농사 지은 셈이지요.”
金씨의 물건을 경매받은 도매인들은 ㎏당 1천~1천2백원에 소규모 재래시장이나 아파트 과일가게에 넘겼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주부 玄모 (35) 씨는 13일 저녁 집앞 과일가게에서 ㎏당 2천원꼴에 방울토마토를 샀다.
玄씨는 “최근 산지에서 토마토 가격이 폭락, 농민들이 울상이라는 뉴스를 들었는데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제때에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남으면 버려지는 청과물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실제 구입가격이 경락가의 3배나 돼 소비자와 농민 모두가 왜곡된 유통구조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본사 취재반은 9~16일 생산자부터 도매상. 소매상. 소비자 단계까지의 농산물 유통구조를 직접 추적, 조사했다.
대상 농산물은 현재 산지에서 출하가 한창인 방울토마토. 장미. 상추. 솎음배추 등 4가지였다.
조사결과 최종 소비자 가격이 경매가격의 2~3배에 이르렀다.
경남김해시어방동에서 9년째 장미를 재배하는 윤여림 (尹汝林.60) 씨는 지난 14일 오전 김해시 불암동 영남화훼농협 공판장에 장미 1백여 다발 (다발당 10송이) 을 들고 나왔다.
이날 경매 가격은 다발당 3천5백원 (골드메달. 로바렉스) ~ 5천6백원 (롯데로즈) 선. 지난해 이맘때 같은 종류의 장미 가격 6천~1만원과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되는 가격이다.
尹씨는 농자재.기름값 폭등으로 생산비가 2배 가량 올라 사실상 큰 손해를 보고 판 셈이다.
尹씨의 장미는 부산의 자유.국제 시장 꽃 도매상가에서 한다발에 5천~8천원 선에 거래됐고 이후 부산대학병원 근처 꽃집에서는 8천~1만원에 판매됐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사는 김영민 (金永民.54) 씨는 지난 16일 상추 4㎏을 1천3백원씩 50㎏을 중간상에 넘겼다.
중간상은 이 상추를 지난 17일 새벽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1천8백원에 팔았다.
이어 제2의 중간상은 슈퍼마킷 등 소매상에 2천4백원에 넘겨 6백원의 마진을 남겼으며 최종적으로 전주 시민들은 2천8백원에 사야 했다.
이밖에 지난 10일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출하된 경기도 하남시 한 농민 (34) 의 솎음배추 1백 상자 (상자당 4㎏) 단위의 경매가격은 평균 15만원. 그러나 도매단계에서 35만원, 최종 소매 단계에서 45만원으로 각각 올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역대 정권 모두가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외쳤지만 헛구호로 끝났다” 며 “새 정부는 이를 농정 개혁대상 1순위로 삼아 실천가능한 개선안을 마련, 철저하게 추진해야만 왜곡된 유통구조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반 수도권=이규연·배익준, 호남=이해석·서형식, 영남=김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