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라크 대사관의 수상한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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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이 고(故) 김선일씨가 근무했던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게 1만5000달러를 빌렸다가 김씨가 피살된 뒤 갚았다고 한다. 도대체 공관 운영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한심한 행태가 벌어졌는지 어이가 없다. 외교부는 "대사관 운영을 위한 현금이 급히 필요해 지난달 9일 김 사장에게 빌렸다가 29일 갚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해도 회계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집행된다는 것은 공관 운영에 큰 구멍이 난 것이다. 그동안 현지 공관과 교민들의 돈거래는 부패와 연관돼 물의를 빚은 적이 있어 이번 건도 적지 않은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라크 현지 사정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대사관이 교민들에게 돈을 빌려야 운영이 된다면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특히 대사관이 돈을 빌릴 시점엔 임홍재 대사가 대사관 계좌가 개설돼 있는 요르단을 방문 중이어서 돈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은 매우 석연치 않다. 또 임 대사가 만난 요르단 한인교회 일부 교인은 이미 김씨의 피랍 가능성을 알고 있어 대사관이 김씨의 실종을 정확히 언제 알았는지도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씨 피살을 전후해 대사관이 보여준 근무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불과 수십명도 안 되는 교민 중 한명이 수주째 실종됐어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민 안전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이 일자 대사관은 "e-메일로 조심하라는 조치를 취했다"는 책임 회피만 했었다. 이런 와중에 터져나온 이번 돈거래는 김씨 피살과 관련해 제기됐던 대사관과 김 사장의 '불투명한 커넥션' 등 각종 의혹을 풀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다. 감사원은 이를 포함해 이번 돈거래의 내막을 한점의 의혹도 없이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